손홍규 지음/교유서가·1만4500원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손홍규(사진)가 <다정한 편견> 이후 3년 만에 두번째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을 펴냈다. <다정한 편견>이 원고지 4.5장이라는 짧은 분량 글들로 이루어졌던 반면, 이번 책에는 그보다 긴 글들이 담겼다. 작가의 개인사와 가족 이야기, 문학과 사회에 관한 생각 등을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다. 이번 책에 소개된 이야기 중 인상적인 것이 작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가 보리타작을 하던 중 오른손 집게손가락이 탈곡기에 빨려들어가 으깨어진 사건이다. “내 문학의 기원, 내 슬픔의 기원이 바로 그 잘려나간 손가락에 있다”고 쓸 정도로 그에게 큰 충격과 후유증을 남겼다. 비교적 젊은 농사꾼으로 매사에 의욕 충만했던 아버지는 그 사건 이후 어쩐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시들해져 버렸다. 겉보기에는 전과 다름없이 열정에 가득찬 것 같았지만, 그것이 절망한 속내를 완전히 가리지는 못했다. 사고 이태 뒤 아버지는 크지 않은 논을 처분하고 중고 트럭을 사서 행상에 나섰다. 옷과 신발, 그릇, 잡화, 닭, 청과 등을 팔고 다녔는데, 장사 수완이 없었던 터라 그다지 신통치는 않았다. 그 무렵 아버지를 두고 작가는 “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절망하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왔”다고 썼다. 트럭 행상 십여년 뒤 조경업체 날품팔이로 칠팔년 세월을 보내던 어느날, 아버지는 소나무 전지작업을 하다가 이십미터 아래로 떨어져 크게 다쳤다. 그때 이미 소설가가 되어 있던 작가는 마취실 입구에서 아버지의 떨리는 손을 마주 잡았던 기억을 들려준다. “당신의 손가락 하나가 내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영글어 내가 되고 소설이 되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당신들을 속속들이 알아서가 아니라 잘 알지 못해서, 알고 싶어서, 알아야만 하므로 소설을 쓴다는 걸. 나는 당신의 발자국을 따라 이야기를 줍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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