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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그림으로 꽃피운 르네상스 시대 ‘공학적 상상력’

등록 2018-12-28 09:00수정 2018-12-28 19:48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
아고스티노 라멜리 지음, 홍성욱 옮김/그림씨·1만4900원

예술과 기술이 한몸인 시절이 있었다. ‘아트’(art)와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그리스어 단어가 등장한다. 그리스·로마 문화를 되살린 르네상스 시기에도, 예술과 기술이 내외 않고 함께 발전했다. 책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은 르네상스가 한창인 1588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출간됐다. 지은이 아고스티노 라멜리는 이탈리아 출생으로 추정되는 군 출신 공학자다.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 덕분에, 라멜리는 이 시대 다른 유능한 엔지니어들처럼 책을 써서 자신의 지식을 세상에 전파할 수 있었다.

특히 라멜리는 “공학적 원리를 따르면 이 세상에 없는 멋진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설계도를 통해 보이는 ‘종이 위에서의 공학’의 전통” 계보에 위치한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의 해설이다. 책은 기계 195개의 도해와 설명을 담고 있는데, 이 기계들은 실제로 제작된 게 아니라 저자가 자신의 기계공학적인 재능과 독창성을 뽐내기 위해 만든 발명품에 가깝다는 의미다. 라멜리의 그림은 단순한 아이디어 수준을 넘어선다. 그의 도판은 기어, 지레, 축과 회전 운동 등 공학적 원리를 충실히 만족시키며, 기계의 작동을 설명하는 부품도나 단면도가 포함되는 등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책 8권을 올려놓고 돌려 가면서 읽을 수 있는 ‘바퀴 독서대’. 그림씨 제공
책 8권을 올려놓고 돌려 가면서 읽을 수 있는 ‘바퀴 독서대’. 그림씨 제공
우물물을 얻는 기계의 모습. 한 사람이 크랭크를 돌리면 기어가 작동해서 우물 위에 있는 큰 바퀴가 회전하고, 이에 따라 두레박을 내렸다 올렸다 할 수 있다. 그림 아래 기어와 도르래의 단면도, 부품도가 사용됐다. 그림씨 제공
우물물을 얻는 기계의 모습. 한 사람이 크랭크를 돌리면 기어가 작동해서 우물 위에 있는 큰 바퀴가 회전하고, 이에 따라 두레박을 내렸다 올렸다 할 수 있다. 그림 아래 기어와 도르래의 단면도, 부품도가 사용됐다. 그림씨 제공
기계의 종류는 취수기, 제분기, 크레인, 굴착기, 군사용 다리, 무기, 분수 등으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꾸준히 후대 기술사가들의 눈길을 끈 ‘히트작’은, 책 8권을 돌려 가면서 읽는 ‘바퀴 독서대’이다. 홍 교수는 이 장치가 라멜리의 시대에 인쇄 혁명이 부른 ‘정보 과잉’의 현상에 대응하는 작품이라고 봤다. 인터넷 보급 뒤에 학자들이 “(컴퓨터) 모니터 하나에 여러 개의 창을 열어놓고 이 창, 저 창을 브라우징하면서” 연구하게 된 것처럼, 값싼 책들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에도 책 한두 권만 깊이 보던 중세와는 다른 연구 방식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무거운 물체를 옮기는 기계. 뒤편에 그려진 도시는 이런 기계가 도시 건축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림씨 제공
무거운 물체를 옮기는 기계. 뒤편에 그려진 도시는 이런 기계가 도시 건축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림씨 제공
새 소리를 내는 장식. 하인이 중앙 파이프로 바람을 불면, 나머지 4개의 파이프에서 마치 플루트를 부는 것 같은 소리가 나고, 이것이 위로 전달되어 인조 새가 소리를 내는 것 같이 들린다. 그림씨 제공
새 소리를 내는 장식. 하인이 중앙 파이프로 바람을 불면, 나머지 4개의 파이프에서 마치 플루트를 부는 것 같은 소리가 나고, 이것이 위로 전달되어 인조 새가 소리를 내는 것 같이 들린다. 그림씨 제공
그림 하단에 있는 돌돌 말려 있는 구조물을 펼치면, 적의 성곽에 닿을 수 있도록 해자를 건너는 교량이 된다. 그림씨 제공
그림 하단에 있는 돌돌 말려 있는 구조물을 펼치면, 적의 성곽에 닿을 수 있도록 해자를 건너는 교량이 된다. 그림씨 제공
국내에는 아직 책의 완역본이 출간되지 않았다. 그림씨 출판사가 문명사적으로 의미 있는 고전 속 그림을 소개하는 ‘클래식그림씨리즈’의 하나로, 도해 102개만 골라서 출판했다. “기계의 작동에 대한 모형을 이해하고 만드는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된 작품을 한국어로 만날 수 있는 첫 기회다. ‘공학’ 하면 실용, 효율 등만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책을 통해 공학이 예술처럼 창의력과 상상력을 마음껏 발산하던 시대의 기운도 간접체험해 볼 수 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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