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 지음/미지북스·1만3800원 지난달 원희룡 제주지사는 외국인만 진료하는 것을 전제로 영리병원 설립을 허가했다. 이 결정을 두고 각계각층에서 비판이 쏟아졌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공론화위의 권고를 제주지사가 일방적으로 뒤집었다’는 것이었다. 제주도는 지난해 4월부터 6개월간 제주도민 180명을 대상으로 영리병원 개설 여부에 대한 숙의형 공론조사를 진행한 뒤 ‘영리병원 불허 결정’을 제주지사에 권고한 바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당시 공론화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숙의 토론을 거칠수록, 영리병원 불허 여론이 조금씩 높아졌다는 점이다. 1차 숙의 토론에 참여한 뒤 영리병원 불허 비율은 56.5%였는데, 3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면접조사 당시 불허 비율(39.5%)보다 높았다. 이는 <철인왕은 없다>의 저자가 제시한 심의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속성을 보여준다. 숙의형 공론조사는 ‘토론 없는 투표’로 대표되는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으면서, 동시에 현실 정치에 실패하고 있는 대의제를 보완한다. ‘심의민주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대의제의 한계와 직접민주주의의 본질적 취약성을 모두 검토하면서, 민주주의를 ‘의사소통의 문제’로 접근할 때 보다 나은 정치 시스템, 즉 심의민주주의를 설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의민주주의에서는 시민들이 의제에 관해 충분한 정보와 근거를 갖고 검토하며, 이를 통해 도출된 결론이 공동체의 정치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숙고된 공적 토론을 통해’, ‘의사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촛불 시위 이후 한국정치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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