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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한 혁명의 제물

등록 2019-01-04 06:00수정 2019-01-04 19:54

꽃과 제물
정영현 지음/문학과지성사·1만5000원

정영현의 소설 <꽃과 제물>은 1968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 당선작이다. 1970년 박완서의 등단작 <나목>을 배출한 바로 그 상이다. 잡지 부록으로 출간되었던 이 소설은 그 뒤 오랫동안 잊혔다. 작가가 이 소설 뒤 몇몇 작품을 발표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활동을 접은 까닭이 컸다. 그렇게 문학사에서 지워진 듯했던 소설이 반세기 만에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꽃과 제물>은 1960년 4·19 학생혁명의 한복판을 생생하게 재현한 소설로서도 의미가 크다. 김지하의 서울대 미학과 동기인 작가는 혁명의 발발에서 마무리까지를 당사자 학생들의 시점에서 사실적으로 되살려낸다. 4·19 당일날 교정과 강의실의 풍경, 경무대 코앞까지 진출한 시위대와 경찰의 격돌, 체포된 학생들이 갇힌 유치장의 모습, 주검이 안치되고 부상자 치료가 이루어지는 병원 상황 등이 박진감 넘치게 묘사된다.

소설은 모두 7개 장으로 이루어졌다. 4개의 ‘봄’ 장은 4·19의 경과를 시간 순으로 좇고, 3개의 ‘여름’ 장은 주인공 준의 가족이 겪는 일제 치하와 해방 1년 뒤, 그리고 1950년 9월 말 전쟁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식민 당국의 감시와 폭력에 시달리는 항일 우국지사 할아버지, 해방 공간 치열한 노선 투쟁 속에 테러리즘에 몸을 던지는 의붓형 기철, 그리고 인민군 치하 서울의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부상병 후송에 동원되어 북으로 올라간 친형 현 등 ‘여름’ 장들의 이야기는 4·19 혁명으로 이어진 역사적 맥락과 흐름을 보여준다.

4개 ‘봄’ 장은 남녀 대학생 넷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짜였다. 재벌의 아들로 시위에 적극 가담하는 성규, 아버지와 친형의 ‘월북’이라는 가족사 때문에 참여에 소극적인 그 친구 준, 성규의 약혼녀지만 준을 향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갈등하는 여대 미술학도 수미, 그리고 성규의 과 동기로 그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미혼모 형주가 그들이다.

4·19 혁명을 정면에서 다루어 1968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당선한 소설 <꽃과 제물>이 반세기 만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사진은 1960년 4·19 혁명 당시 행진하는 대학생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제공
4·19 혁명을 정면에서 다루어 1968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당선한 소설 <꽃과 제물>이 반세기 만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사진은 1960년 4·19 혁명 당시 행진하는 대학생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제공
“총성이 울렸다. 그래도 형주는 멈추지 않고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부상자들 앞에 도착해서 먼저 꿈틀거리는 하나를 끌어 일으켰다. 그것을 지켜보던 시위자들이 우루룩 앞으로 뛰어나가자, 다시 총성이 일었다. 모두 주춤하고 엎드렸다. 그러나 형주는 계속 부상자를 끌어오고 있었다. 성규는 그녀가 죽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을 통해서 열렬히 살기를 결의하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

<꽃과 제물>이 비록 논픽션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4·19혁명을 주도한 학생 세대의 손으로 쓰인 ‘증언문학’으로서 가치는 막중해 보인다. 혁명과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워 내기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젊은이들의 넋을 어루만지는 위무의 구실 역시 톡톡하다 하겠다. “오늘의 세대에게 반세기 동안 숨어 있던 뜻밖의 작품으로 우리 시대의 젊은 정신을 다시 고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행운”이라고, 작가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원로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발문에 썼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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