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힌 아크타르 지음, 유숙열 옮김/이프북스·1만3000원 “‘선별 처리하라.’ 무전기를 통해 명령이 내렸다. 선별 처리하라는 것은 벵골인들을 없애버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단독 명령으로 집단학살이 시작되었다.“ 1971년 3월25일 밤.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저지하려는 파키스탄 군인의 총칼에 수도 다카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전쟁은 그해 말까지 9개월 동안 이어졌고 12월 방글라데시는 독립했다. 많은 이들이 독립을 환호하고 또 많은 이들이 전쟁에서 쌓은 공을 인정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파키스탄군에게 강간당한 여성들이었다. 20만을 헤아릴 정도로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다. 방글라데시 초대 총리 세이크 무집은 이들에게 ‘용감한 여성들’이라는 의미의 ‘비랑가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의 냉대와 비난 속에서 ‘비랑가나’는 ‘창녀’라는 단어와 동급으로 격하되었다. 한국에서 (전쟁에 끌려갔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이라는 의미의 ‘환향녀’가 ‘화냥년’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방글라데시 여성작가인 저자는 1971년 구술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비랑가나’ 여성들의 진술을 토대로 당시 전쟁의 참사와 여성들의 피해를 소설로 재구성했다. 독립전쟁 당시 스무살의 여자 대학생인 매리엄은 독립전쟁이라는 대의명분을 핑계로 임신한 채 연인에게 버림받는다. 전쟁통에 아이는 유산하지만 매리엄은 파키스탄군에 끌려가 수모를 당한다. 전쟁 통에 매리엄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성들을 만난다. 이들은 전쟁이 끝나고 국가 주도의 재활사업에 참여하지만 ‘비랑가나’라는 낙인 속에서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당하고 역사에서 지워진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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