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신이치 지음, 류순미 옮김/글항아리·1만9000원 1997년 3월 발생한 ‘도쿄전력 여직원 살인사건’은 20여년 지난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도쿄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죽은 채 발견된 39살의 와타나베 야스코라는 인물은 낮에는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고 밤이면 시부야에서 성매매를 하는 ‘이중생활’을 10년 가까이 해왔다. 그 기이한 행적에 의문이 풀리지 않을 뿐더러 당시 범인으로 지목됐던 불법체류 네팔인은 1심 무죄, 2·3심 무기징역, 재심 무죄를 오갔고 여전히 진범은 잡히지 않았다. 선정적 보도에 염증을 느낀 언론인 사노 신이치는 손톱만큼이라도 이 사건과 관련 있다고 판단되면 어디든 달려갔다. 수년에 걸친 취재에도 야스코는 베일에 싸여 있다. 중산층 가정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고, 성매매를 하면서도 한번도 외박을 하지 않을 만큼 성실했고, 수준높은 경제학 논문도 써냈다. 빈병을 갖다 팔아 푼돈을 벌 만큼 악착같은 성격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연봉 1천만엔의 커리어우먼이 밤거리에 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 지은이는 수수께끼는 수수께끼인 채로 남겨두면서도,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들을 성실히 수집하면서 충분한 증거 없이 네팔인을 유죄로 단정하는 일본 사법당국의 ‘외국인 차별’을 까발린다. 야스코의 짧은 삶이 머물렀던 공간들의 역사를 두루 취재하며 어두운 내면세계의 근원을 찾아가려는 태도는 흥미롭지만, 옮긴이가 지적하듯 간부급 경력을 갖춘 직장인을 ‘오엘’(오피스 레이디)이란 단어로 표현하는 일본의 뿌리깊은 여성차별을 취재하는 데 좀더 집중했더라면 야스코가 자발적 타락을 선택한 배경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 것 같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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