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책모임 꾸려 책 펴낸 강원임씨
강원임씨는 6살, 8살 두 아들의 엄마다. 결혼 전엔 영어학원 강사를 10년가량 했다. 중·고교 땐 책읽기를 좋아했고 막연히 작가의 꿈도 꿨지만 대학에 간 뒤로는 책과 멀어졌다.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 준비에 매달렸으나 ‘끈기 부족’으로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단다. 첫 아이를 낳고 1년 동안은 육아서에 파묻혀 살았다. ‘천재 아이’를 엄마가 망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불안이 컸단다.
“어제 대형유통점 문화센터 쪽에서 회원 독서모임을 이끌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제가 하면 회원들을 성장으로 이끌 것 같다면서요.”
지난 14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강씨의 얘기다. 지난 6년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는 최근 <엄마의 책모임>(이비락)이란 책을 냈다. 문화센터 담당자도 이 책을 보고 연락을 준 것이다. 강씨는 2013년 직접 엄마들이 참여하는 책모임을 꾸렸다. 첫째는 돌 무렵이었고 둘째는 임신 중이었다. “육아서를 읽다 보니 내 아이보다 책에 나오는 아이가 기준이 되더군요. 육아서를 따라 하는 노력이 실패를 거듭할수록 더 육아서에 매달렸죠.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나처럼 살아도 괜찮을지 자신이 없는 것은 지금 내 삶에 대한 만족이 없어서라고요. 우선 나를 위한 책을 읽자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이번 책은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꾸리고 이끈 책모임 5년의 역사이자 저자의 독서근육 성장사이다. <어린 왕자>로 시작한 책모임은 그간 <사람, 장소, 환대> <채식주의자> <사피엔스> <피로사회>와 같은 책을 토론 목록에 올렸다. 처음엔 겁까지 났던 묵직한 책들이다. 사는 곳인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한 공간에 처음 모였을 때 대부분 아이를 데리고 왔단다. 늘 장소가 고민이었다. “도서관도 어린이 프로그램만 있어요. 아기 엄마를 위한 프로그램은 없어요. 도서관에 미끄럼틀이나 아이가 잠들면 눕힐 수 있는 바운서를 갖춘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장소를 못 구해 요즘 엄마 책모임은 다 집에서 해요. 끝난 뒤 치우려면 너무 힘들어요.” 공공도서관에서 엄마 북클럽 활성화를 위해 토론용 책을 여러 권 구비해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정기 책모임은 한 달에 한 번이지만 따로 프로젝트 모임을 꾸려 다 나가면 한 달에 세 번이 된단다. 프로젝트 모임은 서양미술사 주제로 6개월가량 했고 지금은 10권짜리 <황석영의 한국명단편 101>을 10개월 일정으로 읽고 있다. “4월부턴 서양철학 공부를 하자는 말을 하고 있죠. 정기 모임엔 8명, 프로젝트 모임엔 6명이 나와요.”
책모임은 유지가 쉽지 않다. 24시간 아이에 얽매이는 엄마라면 더 그럴 것이다. 장수 비결은? “멤버들이 그래요. 리더인 제가 자유를 주면서도, 변화가 필요하거나 그럴 때 잘 이끈다고요.” 이런 이야기다. 그는 모임이 2년 지나 토론보다는 수다로 흐른다고 느껴질 때 토론시간 배분 규칙을 정했다. 회원들이 돌아가며 책 별점을 매기고 논제를 정해 토론하고 마지막엔 반드시 토론 소감을 말하도록 했다. 프로젝트 모임을 만든 것도 같은 이유다. “비슷한 토론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극이 필요했죠.”
영어학원 강사 10년뒤 전업주부로
“육아서 볼수록 불안…나부터 찾자”
2013년 둘째 임신중 독서모임 시작
5년 체험기록 ‘엄마의 책모임’ 출간 ‘토론시간 배분 규칙 철저’ 장수비결
“아이 데리고 모일 공간 가장 아쉬워” 그는 메모광이다. “기억력이 약해 전화 온 것까지 수첩에 기록해요.” 리더의 이런 특성은 모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책모임 밴드엔 지난 토론 내용이 빠짐없이 정리되어 있다. 그 자료가 책을 쓰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 제가 돌아가면서 토론 내용을 정리해 기록으로 남기자고 할 때 멤버들이 힘들어했어요. 제가 먼저 하겠다고 하고 설득했죠. 지금은 다들 좋아해요. 기록을 통해 예전 자기 생각을 확인할 수 있잖아요. 남의 말을 글로 정리하면서도 많이 배우죠.”
그는 엄마의 책읽기를 두고 “책 읽을 시간을 훔친다”고 했다. “젖 먹이며 10분, 포대기에 업고 10분 이렇게 시간을 내 하루에 100쪽 이상 읽었어요. 유모차를 끌고 스타벅스 앞을 지나면서 나도 커피 혼자 마시면서 여유롭게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어요.”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 한결 여유가 생긴 지금보다 그때 더 책을 읽었단다. “나 자신을 위한 행위가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더 절실하게 읽었죠.”
지금은 많이 행복하단다. “남이 알아주는 행복이 아니라 저 스스로 만족하는 행복이죠. 가족을 벗어나 나 자신 그리고 세계나 사회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고 같이 의견도 나누잖아요? 사유하는 즐거움이죠. 사실 출산 뒤 많이 공허했어요.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도 컸고요.”
육아엔 어떤 영향을? “집중의 과녁을 저한테 돌린 게 아이들한테 더 나은 영향을 줬다고 확신해요. 전에 ‘아이들이 나보다 더 잘 살고 똑똑해야지’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엄마처럼 이렇게 즐기면서 제대로 느끼면서 생각하면서 살아도 된다’는 생각이죠. 지금 제가 행복하니까요.”
책모임의 가장 큰 즐거움은 ‘자기 발견’이란다. “혼자 읽으면 오래 남지 않아요. 모임에선 한 권의 책을 두고 너무 다양한 이야기와 해석이 나와요. 신기하죠. 토론을 통해 생각이 굳어져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책모임은 또 말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훨씬 길어요. 경청하는 법을 배우죠. 남의 말을 들으며 저의 내면에 드는 생각에 집중해요. 이런 변화에 만족합니다.” 힘든 이야기가 많아 멀리했던 문학책도 이젠 가까운 사이가 됐다. “소설을 읽고 토론하면 인상 깊었던 인물이 다 다르더군요. 그 이유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합니다.”
그는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었다며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 하나를 들려주었다. “김현경 저자의 책 <사람, 장소, 환대>를 보면 ‘예의바른 무관심’이란 말이 나와요. 택시 기사가 뒷좌석 손님이 있어도 마치 없는 것처럼 무관심한 태도를 취한다는 말이죠. 이 개념을 공부하고 나니 이전에 그냥 지나쳐버린 일상의 여러 현상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게 재밌어요. 제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책모임을 하면서 확신하게 된 명제란다. “오랜만에 본 친구가 저에게 남들에 대해 신경 쓰고 예민해졌다고 하더군요. 이전의 저는 둔하고 눈치가 없었거든요. 책 많이 읽어봐야 변하는 것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책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확신합니다.”
책은 지난해 2월부터 4개월 동안 집중해 썼단다. “첫애가 지난해 유치원에 들어간 뒤 바로 쓰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5월부터 육아 휴직 중인 남편도 힘이 많이 됐죠.”
왜 책을 썼는지 물었다. “제가 책모임을 하면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 주변에 책모임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지만 선뜻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또 5년 정도 했으니 정리도 해보고 싶었어요. 엄마들 책모임이 많지만 여기에 초점을 맞춘 책이 없기도 했고요.”
계획을 물으니 두 번째 책 얘기를 했다. “애들이 말을 시작할 때 그걸 옮겨 적은 메모가 많아요. 아이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말일 수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기억을 못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죠. 그걸 가지고 에세이로 푼 글이 꽤 됩니다. 책으로 내려고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엄마의 책모임> 저자 강원임씨가 14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저에게 최고의 서재는 부엌이죠. 제가 가장 오래 머무는 부엌에서 책이 가장 잘 읽혀요. 서재는 집중이 안 됩니다. 서재에 있다 보면 다시 부엌에 갈 일이 많이 생기거든요.”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육아서 볼수록 불안…나부터 찾자”
2013년 둘째 임신중 독서모임 시작
5년 체험기록 ‘엄마의 책모임’ 출간 ‘토론시간 배분 규칙 철저’ 장수비결
“아이 데리고 모일 공간 가장 아쉬워” 그는 메모광이다. “기억력이 약해 전화 온 것까지 수첩에 기록해요.” 리더의 이런 특성은 모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책모임 밴드엔 지난 토론 내용이 빠짐없이 정리되어 있다. 그 자료가 책을 쓰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 제가 돌아가면서 토론 내용을 정리해 기록으로 남기자고 할 때 멤버들이 힘들어했어요. 제가 먼저 하겠다고 하고 설득했죠. 지금은 다들 좋아해요. 기록을 통해 예전 자기 생각을 확인할 수 있잖아요. 남의 말을 글로 정리하면서도 많이 배우죠.”
강원임씨 제안으로 책모임 엄마들은 토론 내용을 정리해 밴드에 올린다.
강원임씨의 독서 메모 노트.
강원임 저자. 김명진 기자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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