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수 지음/문학과지성사·2만3000원 야만과 폭력의 시대. 이성의 빛이 사라진 신앙의 시대. 중세를 일컫는 가장 대중적인 용어는 역사의 ‘암흑기’다. 이런 표현에는 신조어 ‘흑역사’의 뜻이 “없었던 일로 치거나 잊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과거”(국립국어원)인 것처럼 부정적인 시각이 녹아 있다. 중세 사람들 스스로 그토록 시대를 어둡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역사의 ‘해석’은 시대와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낯선 중세>는 역사가들의 문제의식과 연구성과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어온, 학계에 축적된 다채로운 중세관부터 소개한다. 중세를 ‘흑역사’로 위치 짓는 관점은,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부활’시키고자 했던 르네상스 시기(14~16세기), 뒤이은 17~18세기 과학혁명과 계몽운동 시기를 거치면서 확고해졌다. 14~18세기도 넓은 의미의 중세에 포함되지만, 이 시대를 이끌며 근대를 앞당긴 사람들이 ‘암흑기’라는 말을 “중세적 세계관과 삶과 문화를 거부하는 구호”로 활용하며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반작용이 존재했다. 19세기에는 중세를 ‘황금시대’ 등으로 부르는 ‘밝은 중세’가 등장한다. 낙관적 중세관은 ‘12세기의 재발견’ 같은 연구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역사가들은 인구가 증가하며 농업·상업·도시가 발전한 12세기에 “개체의 발견, 합리적 다원적 사고의 출현, 노동 개념의 등장 등 질적 혁신”도 일어났음을 밝혀내, ‘어두운 중세관’을 일부 극복하게 해줬다. “계몽의 맹아기”로서 진보적 중세가 구성된 것이다. 낙관적 중세관도 뒤집힌다. 1970년대 학계에 포스트모던적 역사 연구 조류가 등장하면서다. 중세는 유대인, 한센인, 이단자, 동성애자 등을 억압하며, “지배 규범에서 벗어난 자들을 길들이고 처벌하는 규율과 식민화의 시기”로 드러났다. 기성 권력의 뿌리인 ‘근대성’을 비틀어보는 역사가들에 의해, 금식·폭력·성·죽음 등 몸의 역사, 기적·경이·마법 등 상상의 역사까지 연구범위에 포함됐다. 특히 페미니즘적 접근은 정통 역사 무대에서 ‘엑스트라’로 등장했던 여성을 ‘주연’으로 가시화하며 학계의 신조류를 이끌었다. <낯선 중세>의 지은이는 중세를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이 뒤섞여 있는 복합적인 시대”로 정리한다. 지은이의 중세사 접근방식은 헌사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책의 첫머리에는 “중세에 살았던 모든 사람에게”라는 문구 아래, 장 그르니에의 <섬> 일부가 발췌되어 있다.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번씩이나 해보았다. 그리하여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낯선 중세>는 부제 ‘잃어버린 세계, 그 다채로운 풍경을 거닐다’에서 드러나듯, 중세를 ‘암흑기’ 혹은 ‘판타지’로만 기억하는 이들을 위한 여행 가이드북이다. 지은이는 독자가 중세를 직접 살아낸 사람들의 삶터로 상상해낼 수 있도록, “큰 이야기에서부터 작은 이야기까지 일상의 작은 경험 세계와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큰 테두리를 서로 관련지으며” 정치·외교사, 생활사 등을 망라했다. 지은이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모두 언급하는 프랑스 역사가 자크 르고프의 저작을 비롯해 아날학파, 심성(心性)사, 역사인류학적 연구성과들이 많이 반영됐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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