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공화국 경제사
전강수 지음/여문책·1만7800원
지난 여름 폭염과 함께 미쳐 날뛴 아파트 값이 서민들의 넋을 빼놓았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폭등하던 아파트 값이 강북으로 확산돼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라는 말이 입에 올랐고, 서초구의 한 아파트가 평(3.3㎡)당 1억원에 거래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국토교통부가 탐문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온 나라가 부동산 광풍에 휩싸였다. 투기는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사고 팔아 불로소득(지대)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 발생한다. “모든 국민이 부동산으로 ‘대박’을 노리는 사회, 그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부동산공화국이라는 말 외에 이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부동산공화국 경제사>는 1945년 해방 이후 농지개혁으로 ‘평등지권’(모든 사회 구성원이 토지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짐)을 이뤄 토지 분배가 가장 평등한 나라에 속했던 한국이 어쩌다 부동산공화국으로 전락했는지 역사적으로 살핀다. 저자인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진보와 빈곤>으로 유명한 헨리 조지(1839~1897)의 영향을 받은 경제학자로, 오랫동안 부동산 문제를 연구하며 ‘토지 정의’를 외쳐왔다.
지난해 아파트 값 급등세가 서울 강북으로 번져 이른바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렸다.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전 교수가 부동산 문제의 역사를 보는 건 “한국에서 평등지권 사회가 성립하고 후퇴한 과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례없는 고도성장, 부동산 투기, 기득권 세력의 형성, 불평등과 양극화, 경제위기 등이 모두 그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에서다. 역사를 통해 부동산 관련 ‘신화’, 예를 들면 ‘농지개혁은 이승만의 작품이다’ ‘박정희의 강남 개발은 우국충정에서 비롯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따위를 벗겨낸다.
이 땅에서 토지 소유권은 일본 제국주의가 1910~1918년 실시한 토지조사사업을 거쳐 배타적 권리로 인정받았다. 식민지 지주제에서 소작농은 수확량의 50~60%를 지대로 바쳐야 했다. 해방 직후 농지개혁은 어떤 정치세력도 외면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과제였다. 농지개혁은 유상몰수·유상분배 방식으로 진행됐어도 ‘지주의 나라’를 ‘소농의 나라’로 바꿔놓았다. “대한민국의 농지개혁은 토지 자체를 균등하게 분배해서 일시적으로나마 평등지권 사회를 구현한 대표적 사례다.” 전 교수는 농지개혁이 가능했던 요인을 분석하며, 농지개혁은 이승만의 작품이 아니라 조봉암과 농림부 농지개혁팀, 개혁 성향의 소장 국회의원들이 주인공이었다고 밝힌다. 농업생산성은 상승했고, 농민들은 농업잉여를 자녀들의 교육 투자로 돌렸다.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성장과 한국 사회가 가진 놀라운 역동성의 역사적 기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농지개혁의 한계도 있었다. 도시 토지와 임야 등이 개혁 대상에서 빠졌고, 토지 소유의 불평등이 다시 발생할 것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공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돼 토지 문제의 중심은 농지에서 도시 토지로 옮아갔고, 1960년대 후반부터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이 이루어졌다. “주범은 박정희였다. 강남 개발이 출발점이었는데, 사실 국토 개발의 청사진을 구현한다는 식의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경부고속도로 용지 확보와 정치자금 마련이라는, 엉뚱한 목적을 위해 추진한 것이었다.” 박정희가 부동산공화국의 문을 열었다.
1976년 11월 서울 강남대로 주변 서초동과 역삼동 일대 풍경. 네거리가 현재의 강남역이다. 여문책 제공
강남 개발은 1966년 착공한 제3한강교(한남대교)와 1968년 착공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계기로 시작됐다. 고속도로 건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나온 게 ‘영동지구 구획정리사업’이었다. 영동(永東)은 오늘날 강남을 가리킨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한강변의 공유수면 매립과 함께 대형 아파트 단지 건설이 본격화한다. 1963~1977년 사이 주거지역 지가는 서울 전역에서 87배 상승했는데, 강남은 176배 뛰었다. 강남 개발은 ‘아파트공화국’ ‘부동산공화국’의 원형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한국 사회는 1970년대부터 대략 10년을 주기로 부동산 투기 열풍을 겪으며 ‘지대 추구 사회’(rentseeking society)로 변질되고 말았다. 박정희는 처음으로 지대 추구의 짜릿함을 맛보게 했다는 점에서 과오가 크다.”
전 교수는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검토하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는 중구난방으로 투기억제 대책을 쏟아내다가도 거시경제와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는 기미가 보이면 바로 이전 대책들을 후퇴시키고 적극적인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펼쳤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기념비적인 것들이었다”고 평가한다. “보유세 강화를 중심축으로 하고, 다주택자와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양도세 중과, 그리고 다양한 개발이익 환수제 시행을 보조 축으로 하는 전방위적 정책이었다.” 노무현 정부만이 “부동산 불패 신화와 정면 대결을 펼쳤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실패로 보는 견해도 반박한다. “오로지 집값을 못 잡았다는 것 하나인데, 당시 유례없는 유동성 확대로 전 세계 국가들에서 부동산값이 폭등했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가격 상승 폭이 낮았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비판이다.”
1975년 서울 잠실아파트 분양 신청을 위해 몰려든 시민들. 여문책 제공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는 날을 세운다.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지금까지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해 부동산공화국을 해체하려는 의지를 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까지 발표하고 시행한 부동산 정책도 “시장조절 정책과 주거복지 정책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불로소득이 없다면 실제 사용하지 않을 부동산을 사고 팔 이유가 없다. “부동산공화국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환수하는 일이 급선무다.” 전 교수는 국토보유세 도입을 제안한다. 국토보유세는 토지에만, 그리고 모든 토지 보유자에게 부과된다. “국토보유세 순증분을 모든 국민에게 분배하는 토지배당을 하면 실질적 세 부담이 늘어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부동산을 소유권이 아닌 주거권·사용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헌법의 모호한 토지공개념 조항을 명료화하고 ‘특권이 있는 곳에 우선 과세한다’는 원칙을 세우자고 한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에 사활을 거는 부동산 부자와 토건족이 형성되었고, 보수 언론, 경제관료, 부동산 시장만능주의 학자가 이들과 결탁해 강력한 부동산공화국 지배 동맹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 종부세 반대운동이 대표적이다. “달랑 집 한 채 가지고 자식들 공부시키고 빠듯하게 살아가는 중산층과 서민층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배 동맹과 동류의식을 느끼고 지원군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전 교수는 이 책이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그릇 형성되었거나 형성되고 있는 신화에 진실의 빛을 비추는 구실을 하기 바란다고 한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