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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월호’를 거치며 현실에 눈을 돌리다

등록 2019-01-18 06:01수정 2019-01-18 20:00

윤대녕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세월호와 삼풍 다룬 ‘서울-북미 간’ 등
현실에 밀착한 단편들로 변화 보여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윤대녕 지음/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그날 (세월호 침몰) 뉴스를 보고 수업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다 고개를 숙이고 있더군요. 그게 마치 어른인 저에게 항거하는 모습처럼 보였어요. 작가로서 글을 쓰기도 힘들고, ‘일단 떠나자’는 생각으로 이듬해 초 캐나다로 갔죠.”

윤대녕의 여덟번째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는 그렇게 떠난 캐나다에서 쓴 ‘서울-북미 간’과 ‘나이아가라’를 필두로 모두 여덟 단편이 실렸다. 동덕여대 교수인 그는 연구년이던 2015년 1년 동안 캐나다에 머물렀다. 15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윤대녕을 만났다.

“그런데 워낙이 인터넷 시대다 보니, 캐나다에 있다고 해서 한국을 완전히 떠나 있게 되지는 않더라구요. 메르스 사태니 신경숙 (표절) 건에다, 개인적으로는 각별했던 막내삼촌이 돌아가셔서 여러모로 힘들었어요. 결국은 피하지 않고 글을 써야 살아갈 수 있겠더군요. 실제로 ‘서울-북미 간’을 쓰면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어요.”

‘서울-북미 간’은 세월호 사건이 준 충격과 아픔을 다룬다.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는 4년 전 외동딸을 사고로 잃고 아내와도 헤어진 뒤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채 살아왔다.” 세월호 침몰과 아이들의 죽음은 그의 묵은 상처를 헤집고 들쑤셔, 그는 도망치듯 캐나다로 떠난다. 캐나다에서 그는 에스엔에스로만 몇해째 마음을 나눠 온 여성과 만나지만, 알고 보니 그이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남편을 잃고 캐나다로 떠나와 유복자인 딸을 홀로 키우는 처지. 그런 그가 소설 말미에서 주인공에게 하는 염려와 당부의 말이 아프다. “혹시 자신을 해치기 위해 오신 건 아니겠죠. (…) 그렇다면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지금 옆에 있는 누군가는 계속 살아가야만 하니까요.”

여덟번째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를 낸 소설가 윤대녕. “지난해 두차례 수술을 받고 어머니도 돌아가시는 등 곡절이 많았다”며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더이상은 스스로가 내 소설 주인공들처럼 삼십대 말이라는 느낌을 고집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여덟번째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를 낸 소설가 윤대녕. “지난해 두차례 수술을 받고 어머니도 돌아가시는 등 곡절이 많았다”며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더이상은 스스로가 내 소설 주인공들처럼 삼십대 말이라는 느낌을 고집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딸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상처를 매개 삼아 세월호 참사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사회적 아픔과 대면하는 이야기인 셈인데, 이 소설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주인공의 자기 성찰이다. 81학번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시대에 동참하지 못한 채 언저리를 맴돌았고 (…) 어느덧 타협과 권태를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는 그는 딸과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이 결국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딸의 죽음에 자신이 직접적으로 관계돼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었다. 더불어 3백 명이 넘는 여린 생명의 죽음과 실종에도 자신이 깊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윤대녕의 초기 단편들에 인상적으로 등장했던 막내삼촌의 죽음을 애도한 ‘나이아가라’, 죽은 연인의 유골함을 지니고 추억의 장소를 찾아 떠돌다 결국 연인이 죽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의 사고를 당하는 남자를 등장시킨 ‘경옥의 노래’ 등에서도 죽음은 압도적 비중으로 인물들의 일상과 운명을 지배한다. 그리고 이런 죽음들의 집결이자 결산과도 같은 작품이 ‘밤의 흔적’이다. 이 소설에서 ‘특수 청소’라는 이름으로 죽은 이들의 유물과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하는 장호는 온갖 참혹한 죽음의 뒷수습을 하면서 스스로도 황폐해져 가는 느낌에 시달린다. 그런 그가 한 여성 의뢰인의 자살을 방지한 일이 계기가 되어 그 여성과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는데, 소설 말미에서 그가 여성에게 보낸 문자가 의미심장하다. “저는 아무래도 당신이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앞으로 뭔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이것을, 세월호에서 비롯된 충격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작품을 써야 한다는, 작가 자신에게 하는 당부의 말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를 낸 소설가 윤대녕씨가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를 낸 소설가 윤대녕씨가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수록작 중 ‘총’은 골수 국가주의자이며 가족들에게 폭력을 일삼았던 아버지에게 총구를 겨누는 아들을 등장시킨 다소 충격적인 작품이다. 작가는 “국가 폭력의 상징과도 같은 한 인물에 대한 분노를 견디기 힘들어서 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동안은 (현실에 대한) 환멸도 있고 (현실을 중시하는 이들과) 불화도 없지 않아 현실에 그리 사로잡히고 싶지 않았는데,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현실을 마냥 피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덧붙였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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