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 이재만 옮김/책과함께·4만8000원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은 더 큰 전쟁을 배태했을 뿐이다. 1914년 6월28일 세르비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왕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의 암살이 한달 뒤 ‘서구 문명의 자살’이라고까지 불리는 재앙으로 격화됐다. 1차 세계대전은 세계사적 의미 덕분에 그 기원에 관한 연구는 학계에서 ‘하나의 산업’으로 정착됐다. 여러 차원에서 원인을 분석해왔다. 첫째는, 독일·오스트리아 대 영국·프랑스·러시아라는 유럽의 5대 열강 중 누가 전쟁을 일으켰냐는 책임론 차원이다. 전쟁을 선포하고 패전한 독일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 통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견해는 1961년 당시 정부 문서에 최초로 광범하게 접근한 독일 사학자 프리츠 피셔의 기념비적 저작 <1차 대전에서 독일의 목적들>로 굳어졌다. 피셔는 당시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과 마찬가지로 독일 민족의 ‘생활 공간’을 확장하려는 팽창주의 노선과 국내의 반체제 세력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전쟁을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피셔 테제’라고까지 불리는 그의 연구는 1912년 12월 빌헬름 2세 독일 황제가 주재한 전쟁 내각에서 2년 뒤인 1914년 여름에 전쟁을 시작하자고 했다는 사실 등으로 독일 책임론을 뒷받침했다. ‘왜, 어떻게’ 전쟁이 벌어졌느냐는 차원의 접근도 있다. 좌파 사학계의 ‘제국주의 전쟁론’이나, 1870년대 독일의 통일로 인한 유럽의 세력균형 붕괴로 보는 지정학적 접근이 대표적이다. 피셔의 연구 이후 학계의 논의는 국제관계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춰왔다. 군비증강 등 안보 강화는 상대국에게도 안보 강화 조처를 불러, 전반적인 안보 환경이 악화된다는 ‘안보 딜레마’는 1차 대전 원인 분석에서 한 축이 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교수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몽유병자들>은 국제관계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을 분석한 대표적인 작업으로 평가된다. 그는 ‘왜, 어떻게’ 차원의 연구 중에서도 ‘어떻게’에 초점을 맞춰 전쟁을 부른 핵심 행위자들의 결정을 시간순으로 추적한다. 그는 “전쟁을 적극적으로 계획한 국가는 없었으나 (…) 믿음과 신뢰의 수준(심지어 동맹끼리도)이 낮고 적대감과 피해망상의 수준이 높은 집행부들이 속사포처럼 작용한 결과, 사상 최악의 대참사가 일어났다”고 결론낸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책임이 적어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못지않은” 1차 대전은 “특정 국가의 범죄가 아닌 공동의 비극”이었다. 전쟁을 촉발한 7월 위기의 전개 속도는 외교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오스트리아가 ‘베오그라드에서 진군을 멈춰야만 하고’ 세르비아 수도 점령을 강화 조건으로 해야 한다는 독일의 중재 노력은 러시아가 신속히 대응해 독일의 맞대응을 초래함으로써 무위로 돌아갔다.” 독일이 러시아에 먼저 선전포고를 했으나, “러시아는 일주일 만에 독일 전선으로 병력을 이동했다. 러시아는 총동원령을 내린 첫 열강이었고, 독-러 충돌은 러시아의 동프로이센 침략으로 러시아 땅이 아닌 독일에서 벌어졌다.” 저자는 이들이 체제의 논리에 따른 꼭두각시가 아니라 “행위능력으로 가득하고 충분히 다른 미래를 실현할 수 있는 주역”이었음을 논증한다. 2017년 12월 북핵 위기 중재 차원에서 북한을 방문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이 책을 건넸다. ‘의도하지 않는 분쟁’이 내포한 위험성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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