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지음/통나무·1만8000원 총살형 집행장이 낭독되고 마지막 유언. 22살의 문상길 중위는 처형을 앞두고 담담하게 이같이 말한다. “여러분은 한국의 군대입니다. 매국노의 단독정부 아래서 미국의 지휘하에 한국민족을 학살하는 한국 군대가 되지 말라는 것이 저의 마지막 염원입니다.” 1948년 9월23일, 문상길 중위는 자신의 직속상관이자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 작전을 단행한 박진경 대령을 암살한 죄로 사형당한다. 문 중위의 유언에 ‘민중항쟁’의 본질이 다 담겨 있다고 보는 저자는 바로 이같은 이유로 ‘여순반란’을 ‘여순민중항쟁’으로 불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순민중항쟁의 최초의 계기는 여수 군부대의 제주 토벌 출동거부였으며, 이는 군인에게 자국민을 학살하라는 부당한 명령에 대한 정의로운 거부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주 4?3과 여순민중항쟁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에 벌어졌던 최대의 민족적 비극이면서, 동시에 반공체제를 구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여순민중항쟁으로 이승만은 강고한 우익체제를 구축했다. 예비검속, 연좌제를 실시했고, 보도연맹을 창설했다. (…) 이러한 모든 변화를 구축하는 계기가 바로 여순민중항쟁이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민중항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공권력에 대한 공포감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불신감만 키웠다. 우리는 너무 몰랐다. 우리는 너무 조용했다.” 저자는 두 사건에서 냉전구도에 따른 진영의 편가르기나 이념이 아닌, 비극적 시대에서 고뇌했던 인간의 모습에 주목한다. 여러 인물들의 실제 진술과 녹취록 인용은 생생했던 당시 상황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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