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령 지음/푸른역사·1만5000원 어떤 글은 읽으면 마음속 커튼이 부푼다. 바람이 들어온다. <여자전-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를 쓴, 최근 별세한 김서령 작가가 그렇다. “예민한 감각과 풍부한 어휘와 생생한 비유가 만들어내는 삶의 진실”(염무웅 문학평론가), 그 ‘서령체’가 담긴 유고집으로 음식 에세이가 나왔다. 부제목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에서 짐작되듯, 어머니와 고모가 해준 음식에 관한 기억들을 한솥 가득 글로 쪄냈다. 남편이 도시에서 연애하고 사는 동안 안동 종갓집을 지킨 어머니, 신혼 때 남편이 북으로 사라진 뒤 평생 시부모를 모신 고모. 그의 음식 이야기는 “냉동실 문을 잡고 삶과 죽음의 어처구니없음을 생각”하는 인생론이 되곤 한다. “말없이 반짝이는 것들에 매혹돼왔다”는 그가 말년에 “거기에 대해 할 말이 너무도 많아졌다”는 ‘거기’는 바로, 정성이다. 윗목에서 메주를 밟던 엄마 생각. “정성이 일상으로 구현되는 것이 음식이고 그 음식의 본질은 기본이 장이다. 장을 담기 위해 메주를 디딜 때 (…) 엄마는 흰 수건을 머리에 둘러쓰고 그 한 귀퉁이를 입에 물었다. 함부로 말을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침이 튈까봐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흐트러질까봐 하는 경계였다.” “봄에 부는 바람결 같은 아취를 가진 장”이라는 햇장부터 밀가루떡 ‘연변’, 좁쌀 식혜, 명태 보푸름, 무익지, 갱미죽, 정향극렬주…. 이름만 낯설다. 깃든 손품과 재료가 얼마나 흔해서 아름다운지, 책은 정성스럽게 일러준다. 음식뿐일까. “이름을 부르지 않아서 그리운 것을 몰랐을 뿐”인 게.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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