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우 지음/생각비행·1만8000원 2012년 1월, 해고된 지 957일 만에 해고무효소송 2심 선고가 열렸다. 고등법원은 1심과 달리 회사가 정리해고의 요건을 충족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해고 노동자들의 눈동자는 재판장을 향하고, 회사의 노무담당 실장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는다. 해고 노동자들이 30만원씩 갹출해 인지대와 송달료를 충당한 뒤 상고한다. 1년 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1334일 만에 재판은 패소로 끝났다. 파카한일유압의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싸운 저자의 9년간의 일기를 책으로 엮었다. 2008년 자동차부품업체인 파카한일유압은 노조의 파업을 피해 경기도 외국투자자본 전용공단에 별도의 생산시설을 완공한 뒤, 경영 악화를 이유로 구조조정 안을 발표했다. 저자는 부당해고에 맞서 1000일이 넘는 기간 매일 아침 출근집회를 지키며 해고 노동자의 하루를 기록했다. “싸우는 사람은 방향감각을 상실하기 쉽다. 몸의 근육들이 생각에 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해버리는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방향과 의미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버거울 때가 있다.” 해고 노동자의 일기엔 수시로 자본 앞에 무력해지고, 동시에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지키려는 마음이 번갈아 드러난다. 딸이 다니던 학교 후배들이 세월호 참사로 숨졌다는 현실에 절망하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무사히 고공농성을 마쳤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예만도 못한 노동자”임에도 삶을 버티는 이유는 “희망을 버리기 어려운” 탓이다. “희망이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걸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는 건 삶에 대한 예의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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