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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단순 가해자만은 아닌 미군, 그러나…

등록 2019-02-22 06:00수정 2019-02-22 19:10

오키나와 작가 마따요시 소설집 출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돼지의 보복’ 등
오키나와 전통과 현실 담은 작품들 실려
돼지의 보복
마따요시 에이끼 지음, 곽형덕 옮김/창비·1만3500원

메도루마 과 함께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마따요시 에이끼(72)의 소설집 <돼지의 보복>이 창비세계문학 67번으로 번역돼 나왔다. 마따요시의 작품으로는 일찍이 <긴네무 집>(2014, 글누림)이 번역 소개된 바 있는데, 그 책의 작가 이름은 ‘마타요시 에이키’로 되어 있어서 독자 쪽에서는 혼란을 느낄 수도 있겠다.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과 다른 창비만의 표기 방침 때문인데, 작가 이름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이름과 지명 등 고유명사 표기에도 같은 방침이 적용된다.

마따요시는 <혼 불어넣기>(2010)와 <기억의 숲>(2018) 등이 국내에 소개된 메도루마 과 같은 오키나와 작가이긴 하지만, 메도루마가 오키나와 변방인 북부 출신인 데 비해 마따요시는 과거 류큐 왕국의 중심이었으며 지금은 미군 기지가 밀집된 남부 출신이다. <긴네무 집>의 번역자로 이번 책 <돼지의 보복> 역시 번역한 곽형덕 교수(명지대 일문과)는 <긴네무 집>에 실린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관한 흥미로운 비교를 해 보인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 제이가 1970년대 도쿄 술집의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반면, 같은 1970년대에 역시 주크박스가 나오지만 오키나와를 무대로 한 소설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의 주인공인 미군 병사 조지는 베트남전쟁에 끌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떤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평온한 도쿄의 일상이 오키나와의 희생에 의해 담보된 것이라고 한다면 두 소설은 완전히 다른 현실을 그린 것이 아니라 미·일 안보체제가 도쿄와 오키나와에서 얼마나 다르게 기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돼지의 보복>의 오키나와 작가 마따요시 에이끼. 앞서 번역된 <긴네무 집>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피해자 의식을 다른 식으로 넘어서고 싶다”며 “내 작품은 오키나와 문학인 동시에 아시아 문학”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창비 제공
<돼지의 보복>의 오키나와 작가 마따요시 에이끼. 앞서 번역된 <긴네무 집>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피해자 의식을 다른 식으로 넘어서고 싶다”며 “내 작품은 오키나와 문학인 동시에 아시아 문학”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창비 제공
<돼지의 보복>에는 표제작과 ‘등에 그려진 협죽도’ 두 중편이 실렸다. 1996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표제작은 오키나와 섬의 고유한 풍속인 ‘우간’을 소재로 삼는다. 우간이란 ‘우타키’라는 영적인 장소를 참배함으로써 죄를 씻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풍습을 가리킨다. 스낵바로 불리는 술집에서 일하던 열아홉살 남자 대학생 쇼오끼찌는 술집 마담 미요와 여종업원들인 요오꼬와 와까꼬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 섬으로 향한다. 웬 돼지 한 마리가 술집에 난입하는 바람에 와까꼬가 “넋을 떨어뜨렸”기 때문. 여자들은 돼지의 침입이 상징하는 액운을 떨치고 각자의 죄를 참회하고자 우간에 나서기로 하는데, 쇼오끼찌는 이 기회에 풍장한 지 13년 된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해 문중묘에 납골할 생각이다.

섬에 들어간 일행은 민박집 여주인이 2층 창 너머로 떨어져 다치고, 상한 돼지고기를 먹은 여자들이 설사에 시달리는 등 곡절을 거친 끝에 가까스로 우간에 나선다. 그들이 우간을 위해 찾는 장소는 쇼오끼찌가 아비의 유골을 문중묘에 납골하지 않고 풍장 상태 그대로 보존하면서 새로운 우타키로 삼은 곳. 우간에 나서는 과정에서 여자들은 자신들 삶의 아픔과 설움을 토로하며 죄를 참회하는데, “시련이 없으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어”라는 와까꼬의 말은 돼지의 ‘보복’이 ‘보답’으로 몸을 바꾸는 전화위복의 이치를 일러준다.

마따요시는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미군기지 관련 소설을 가장 많이 쓴 작가에 속한다. 그러나 가령 미군기지 반대 투쟁에 매진하면서 남는 시간에 글을 쓴다는 메도루마 과 달리 마따요시 소설에서 미군과 오키나와인의 관계는 단순한 가해-피해 관계로 요약되지 않는다. ‘등에 그려진 협죽도’는 미군 아버지와 오키나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젊은 여성 미찌꼬와 미군 병사 재키를 주인공 삼는데, 여기서도 재키는 베트남전쟁에 불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인물로 나온다. 미찌꼬의 미군 아버지가 6·25전쟁에서 숨졌다는 배경은 미국과 일본, 한반도가 착종된 동북아 지정학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따요시 소설의 이런 특징은 가령 메도루마의 선명한 노선에 비해 한층 복합적이며 세련된 태도라 할 수도 있겠지만, 옮긴이 곽형덕 교수의 말마따나 “내면의 고통을 만들어낸 현실에 대한 분노 또한 정화할 위험”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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