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공상하지 않는다 복도훈 지음/은행나무·1만6000원
‘SF는 공상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겨냥하는 바는 명확하다. 에스에프(SF)를 생각 없이 ‘공상과학소설’이라 새기는 관습에 대한 문제 제기인 것이다. 에스에프를, 과학을 빙자한 허황한 공상 정도로 치부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에스에프의 상상은 생각보다 과학적 근거에 충실하다.
의 지은이 복도훈(사진·서울과학기술대 문창과 교수)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공상’과학소설이냐 ‘과학’소설이냐 하는 구분보다 그에게 더 긴요한 것은 이른바 본격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의 관계 설정이다. 책 맨 앞에 놓인 글 ‘SF, 과학(Science)과 픽션(Fiction) 사이에서’에서 그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에스에프 소설 <우주전쟁>(1898) 이야기를 꺼낸다. 화성 생명체의 지구 방문을 소재로 삼은 이 소설에서 외계 생명체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를 대변하는 이들이 목사와 군인이다. 목사에게 화성 생명체는 메시아의 대리인으로 환대해야 하는 존재인 반면, 군인에게는 싸워서 물리쳐야 할 적으로 간주된다. 이 두 가지 태도가 본격문학과 에스에프 사이의 관계에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가령 “(에스에프의) 가능성들을 문학이 적극적으로 흡수해 들인다면, SF 장르는 문학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는 평론가 박진의 발언은 에스에프를 일종의 문학적 식민지로 여기는 기존 문학의 불순한 의도를 드러낸다는 게 복도훈의 판단이다. 반대로, 듀나의 <악스트> 인터뷰 이후 에스에프 독자들이 잡지에 대해 표출한 항의와 불만은 본격문학의 그런 태도를 에스에프에 대한 ‘침략’과 ‘정복’ 시도로 간주하는 피해의식을 보여준다.
국내 최초의 에스에프 평론집을 표방하는 이 책에서 지은이는 듀나, 복거일, 윤이형, 배명훈 등의 에스에프 작품과 함께 북한 에스에프와 영화 <지구를 지켜라!>, 그리고 딕, 러브크래프트, 밸러드 등의 번역 소설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복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본격문학과 에스에프의 관계가 여전히 거리가 있고 불편한 게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 서로의 문학적 시민권을 상호 승인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며 “나 역시 본격 에스에프를 대상으로 한 평론과 강의 등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복도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