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아 지음/갈무리·2만4000원 지금은 수인번호 ‘503’으로 회자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기를 누리던 시절 보수 언론은 그를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에 비유하며 찬사를 보냈다. 누리꾼들은 이를 비꼬아 ‘만물근혜설’을 제기했고, 다수의 언론도 이 비판에 가세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어떤 관점을 취한 쪽이든 그를 ‘아버지를 잃은 소녀’이자 ‘여왕’이라는 상징으로 보는 데 이의를 나타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에서 이를 “소녀와 퀸이라는 서로 이질적인 표상과 상징이 대중문화 아이콘과 여성 대통령 사이를 넘나들며 들러붙고 변신하는 (…) 탈근대적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여성 리더의 형상은 홀로 역경을 딛고 세상과 마주해야 하는, 강인하지만 외롭고, 막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언제든 ‘적’의 공격에 위태롭게 노출된 존재”여서 “이 팬심에는 ‘스타’에 대한 동경, 열광과 함께 ‘퀸/소녀’의 위태로움과 연약함을 걱정하는 (가부장적) ‘대리부모’의 정념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여성과 권력에 관한 이런 모순되고 이중적인 시선은 촛불이 낳은 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지은이의 판단이다. 여성혐오가 판치고, 성폭력이 아직도 ‘사랑’으로 포장된다. 이와 관련한 문제 제기는 늘 ‘부차적인 것’이거나 ‘대의를 그르치는 것’으로 비난받는다. 지은이는 “공론장의 역사와 패러다임 속에 페미니즘과 젠더 정치의 자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가 지금 여기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자들’이라는 기이한 가부장적 혈통 계승 서사가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일갈한다. 또 미투 운동, 위안부 피해자, 일제 강점기 이후 공론장, 최근의 대안인문학 운동 등 다양한 분야를 정동(affect) 이론에 근거해 분석함으로써 페미니즘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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