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은 지음, 정지윤 그림/보리·1만5000원 남사당패의 놀이판을 생생하게 그려낸 <줄 타는 아이 어름 삐리>가 11년 만에 출판사를 바꿔 다시 나왔다. 남사당놀이는 남자들로 구성된 유랑광대들이 벌이는 여섯 마당의 전통놀이다. 여섯 마당은 풍물, 버나(접시 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 놀음) 순서로 진행된다. 농번기 마을을 돌며 횡포를 일삼는 탐관오리와 허세 부리는 양반들을 익살스럽게 비꼬며, 즐거움을 줬다. ‘쾌지나 칭칭 나네.’ 남사당놀이 풍물패 길놀이로 책을 연다. 꼭두쇠의 꽹과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징 소리, 장구 소리가 마을 구석까지 퍼지면 구경꾼들이 모여든다. 남사당패에서 재주를 배우는 가장 낮은 위치의 ‘삐리’들은 춤을 추며 흥을 돋운다. 어름 삐리는 얼마나 가난했던가, 보리쌀 한 말에 팔려왔다. 줄 타는 게 힘들어서일까,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일까? 매일 운다. 운다고 매 맞고, 매 맞고 또 울고…. 더구나 이날따라 아프다. 어름 삐리는 다음부터 하면 안 되냐고 어름쇠에게 부탁하지만, “어린것이 줄을 타야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는 꼭두쇠의 부라림에 하는 수 없이 줄을 탄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어름 삐리는 그만 줄에서 떨어진다. 멍석에 실려나가기 바쁘게 덧뵈기 광대들은 얼른 탈을 쓰고 나와 한바탕 놀이를 벌인다. 구경꾼들은 피투성이 삐리는 잊고 다시 신명에 빠진다. “우리는 대잡이 광대가 조종하는 대로 팔다리를 흔들어야 하고 어름 삐리는 어른 광대들이 시키는 대로 줄타기를 해야 하고.” 어름 삐리의 처지와 다를 바 없는 덜미 인형들은 ‘삐리 탈출극’을 벌이며 새로운 판타지로 향해간다. 이 책은 지금은 볼 수 없는 남사당놀이를 그대로 옮겨놓은 전통적 색감의 그림이 돋보인다. 각시인형, 홍동지인형 등 덜미 인형들의 특징을 잘 살려낸 해학적인 그림 너머의 슬픔이 전해진다. 7살 이상.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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