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라는 인간 활동의 가치가 의심받을 때 누구를 변호사로 세우면 좋을까. <마르케스의 서재>를 읽은 뒤, 탕누어(61)라면 그 역할을 십분 감당해주리라고, 아니 이 책으로 이미 그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했다.
대만 타이베이 국제 도서전을 취재하러 가는 계획이 잡혔을 때, ‘책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케스의 서재>를 번역한 김태성 번역가는 흔쾌히 섭외를 맡아줬고, 탕누어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 15일 대만 타이베이 지하철 중샤오둔화역(忠孝敦化站) 인근에 있는 카페에서 탕누어를 만났다. 언론 인터뷰를 하는 날임에도 맨발의 샌들을 신은 편한 옷차림으로 나왔다. 타이베이 시내 카페들을 전전하며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써온 그의 삶이 궁금했다. 인간에 대한 정의도 바꿔놓는다는 인공지능 시대에 독서라는 인간의 행위가 여전히 의미가 있다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통역은 김태성 번역가가 맡았다.
-<마르케스의 서재>(원제는 ‘열독 이야기’)에서 대만 언론과도 잘 인터뷰하지 않는다고 하셨던데 그렇게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대만에서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고 공식적인 활동도 참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한 지 꽤 됐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말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은 좋아하지만요. 대만 기자의 수준이 아주 낮습니다. 가끔 약이 오르기도 해요. 아내인 주톈신(朱天心)이 몇 년 전에 작은 상을 받았어요. 대만 기자의 첫 질문은 “주 선생님, 처음으로 글을 쓰시고 바로 상을 받은 기분이 어떤가요”라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주톈신은 17살부터 지금까지 글을 써 왔습니다. 그 기자는 전혀 몰랐던 거죠.”
-원래 융캉제에 있는 카페에 있다가 최근에 이 카페로 옮겨온 걸로 아는데 이 카페로 오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카페에서 오랜 세월 지내다 보면, 도시 안에 있는 많은 생명체가 다 나보다 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지금 노년이지만, 지금 보이는 창밖 세상이, 가게, 사람, 나무, 집 등 많은 것들이 대부분 다 저보다 젊습니다. 1992년부터 정식으로 카페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 후로 지금처럼 매일 글을 씁니다.
지금까지 거쳐온 카페가 10개를 넘었을 거예요. 카페가 문을 닫으면, 새로운 카페를 찾아야 했습니다. 융캉제에 있는 카페는 가장 편안했던 가게예요. 하지만 가게 임대료가 올랐습니다. 카페 사장과 건물주가 협상이 안 돼서 결국 스타벅스 카페로 바뀌었어요. 저는 스타벅스처럼 시끄러운 카페는 좋아하지 않아서 이 카페로 옮겨왔습니다.
한 카페를 떠나게 되면 슬프죠. 왜냐하면 카페는 제가 이 세계와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곳이니까요. 제가 카페에 나와 있는 건, 곧 제 서재를 세상 밖으로 가져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 카페들은 단순한 카페가 아닙니다. 제 생활 노선, 이동 방식, 밥 먹기, 걷기, 이런 것들이 모두 묻어 있는 공간입니다. 카페를 하나 옮기면 생각 보다 바뀌는 것이 많은 거죠. 좋은 점도 있습니다. 카페를 바꾸면 새 직원도 보고, 다른 손님, 다른 풍경과 사람도 보게 됩니다. 또 다른 시각에서 타이베이를 만나는 느낌이에요.”
-집에서 더 안락하게 여러 책을 골라 읽고 건강을 위해서 좋은 책상과 의자를 구비해서 읽고 쓰면 더 편할 것 같은데, 카페에서 글을 쓰는 이유가 뭔가요?
“저희 집은 좁아서 서재가 없습니다. 작업 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서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오히려 책을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을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독서는 글쓰기보다 편한 일이기 때문이죠. 자료를 찾는다고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두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독서에 숨어버리면 글을 쓸 수가 없어요. 하지만 카페에서 작업하면 책을 많이 가지고 나올 수가 없습니다. 글이 잘 안 써지거나, 쓰기 귀찮아져서 책만 보는 것을 피할 수 있어요. 여기 나오면 글 쓰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을 조여야 해요. 오늘 글이 잘 안 써진다 싶어도, 비어있는 원고지와 마주 앉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전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기억으로 글을 씁니다. 만약에 완벽하게 옮겨야 한다면 집에 가서 찾아보면 됩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전자 제품을 안 써요. 핸드폰도 안 쓰고 컴퓨터도 없어요. 하지만 가끔은 제 아들의 아이패드를 씁니다. 급하게 찾아야 할 게 있으면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써야 하는 책만 가지고 나오는 것은 제가 의도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소중한 작업 시간 안에 글만 쓸 수 있기 때문이죠. 글을 다 쓰고, 집으로 돌아가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제 진정한 독서 시간을 보냅니다.”
-<열독 이야기>에서 엄청나게 많은 책이 등장하는데 혹시 그동안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 세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분야 책을 주로 읽습니까.
“제가 그동안 몇 권을 읽었는지 세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의식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네요. 습관이 되니까 나중엔 그냥 계속 읽게 되더라고요. 이제 독서는 제게 생활 속의 자연스러운 활동입니다. 지금도 어디에 있든 손에 책 한 권이 없으면 뭔가 두고 온 것처럼 부자연스러워요.
제게 가장 곤란했던 것은 학과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모든 분야를 다 알아야 했기 때문이죠. 제겐 경제학, 물리학, 정치학을 읽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처음엔 억지로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극복했습니다.
한창 책을 읽은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6~8시간입니다. 독서 속도는 느리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이삼일이면 책 한 권을 읽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책 내용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칸트의 철학책은 천천히 읽어야겠지만, 그래도 책 한 권 읽는 데에 일주일을 넘기진 않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저는 왜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고, 책을 읽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책엔 위대한 사상가의 엄청난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저자가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그가 평생 제대로 쓸 수 있는 책은 10권이 채 안 됩니다. 나이키 신발 한 켤레 살 돈으로 이런 위대한 사람들의 한평생을 살 수 있는 거예요. 저는 책이야말로 가장 저렴하고 가성비 높은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저술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9시에 카페에 들어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작가들이 밤에 글을 쓴다고 생각하지만, 지속적이고 진정한 저술은 낮에 하는 겁니다. 제가 아는 작가 모두가 그렇습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마찬가지지요. 글을 쓰기 전에는 다른 어떤 일에도 주의를 빼앗기지 않아요. 나보코프는 신문조차 오후에 읽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가장 좋은 시간을 저술에 쓰는 거죠.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 S. Eliot)도 아침에 글을 썼습니다. 이런 유명한 작가들도 격정이 아니라 집중력과 이해력으로 글을 쓴 거죠.
저도 하루 중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카페에 와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두 문단을 쓸 수 있습니다. 아침에 출판사에 출근하고 오후에 나와서 한 문단 더 썼죠.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하루에 네 시간 정도 저술합니다. 아침부터 점심을 조금 지난 시간까지 쓰는 겁니다. 이 카페에선 아주 저렴하게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사무용 책상’을 쓸 수 있고, 밥을 해주는 사람도 있어서 가성비가 아주 좋습니다.
글 쓰는 속도는 느린 편입니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생각도 하고 고쳐보기도 합니다. 만년필로 쓰면 하루에 6000~8000자를 쓸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300~500자만 남습니다. 오후 1시에서 1시반 사이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에 가면 일상생활을 하는 거죠.
저는 원고지에 만년필로 글을 씁니다. (가방을 가져와 소지품을 보여주며) 볼품없지만 제가 가지고 다녀야 하는 물건들입니다. 잉크출판사 추안민 사장은 제 좋은 친구라서 원고지를 인쇄해다 줍니다. 저술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수공업이죠. (웃음)
이 원고는 다 쓴지 1년이 넘었어요. 올해 1월부터 이 원고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은 아직 정확히 정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제목은 <나이, 독서, 글쓰기>(年紀、 閱讀、 書寫)입니다. 나이는 중요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제가 60살까지 사는 것을 깨닫게 됐고, 이 나이에 다시 독서와 저술을 뒤돌아볼 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썼습니다. 제가 예전에 자주 썼던 독서와 저술에 나이라는 변수를 넣은 것이지요.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나한테 보이는 것들이 모두 나보다 젊구나.’ 책을 볼 때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엔 책을 쓴 사람이 모두 대단하고, 나보다 나이가 많고, 내가 경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저자들이 대부분 저보다 젊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를 썼을 때 한 명은 31살이고 한 명은 29살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죽었을 때 52살이었는데, 저는 지금 61살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백, 두보, 헤밍웨이처럼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모두 저보다 젊은 사람이 쓴 작품이 된 거예요. 갑자기 이전과 다른 독서와 저술에 관한 이미지가 생겼어요. 이 책은 이런 이미지를 다뤘습니다.
카페에서 저술하는 과정에 대해 묻자 탕누어는 자신의 가방을 가져와 원고지와 만년필, 잉크통을 꺼내보여줬다. “저는 원고지에 만년필로 글을 씁니다. 볼품없지만 제가 가지고 다녀야 하는 물건들입니다. 저술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수공업이죠”라고 말했다. 사진 김지훈 기자
-요즘은 전문가의 시대라며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만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양한 분야를 읽는 이유가 뭔가요.
“전문성은 필요하고,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젊었을 때 저는 여러 다른 생각이 있었고, 게을렀기 때문에 전문가의 길로 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분야들 사이의 벽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 분야만 깊이 파고들어 가면 우리 삶의 경험과 결합하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물리학의 양자역학은 일반적인 언어로 그 원리를 설명하기 힘들어요. 이 학문은 수학의 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있고 검증할 수 있지만 보편적인 언어로 서술할 수 없습니다. 분야와 분야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중간에서 대화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물리학자가 소설가와 대화를 나누기 쉽지 않습니다. 모든 분야는 각자의 분류법이 있습니다. 자기 분야의 문제가 아니면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의 문제를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탈로 칼비노가 <다음 천 년을 위한 여섯 가지 메모>(Six Memos for the Next Millennium)에서 “문학만은 충분히 큰 목표를 세운다. 문학으로 모든 학과를 다 융합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상적이지만, 소설은 그 안에서 삶의 문제를 다 해결해줍니다.
제가 젊었을 때 한 선생님이 이 세상을 알고 싶으면 기초적인 지식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리학은 대략 어떤 것을 말하는지, 물리학자들이 어떤 시야에서 세상을 보는지, 물리학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긴 시간 동안 저는 억지로 물리학, 경제학, 정치학, 인류학 등을 공부했습니다. 이 지식을 모르면 대답할 수 없고 생각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문적으로 한 학문 안에서 보호를 받으면 편할 수 있겠지만 편한 게 꼭 좋은 건 아니잖아요. 저도 젊은 시절 경제학을 공부할 때 반년에서 일 년 동안은 뭘 공부하는지 전혀 몰랐었어요. 케인스의 경제학책을 읽었을 때 모든 글자를 읽을 순 있었지만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몰랐어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이해되더라고요. 제겐 특별한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인터뷰 2편)
타이베이/글·사진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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