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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장자 사상 핵심은 비판·조화·초연”

등록 2019-03-08 06:01수정 2019-03-08 20:08

노장사상 전문가 이강수 교수
평생 연구 담은 ‘장자’ 번역 완간
2005년 1권 이어 14년 만에 2·3권
‘동아시아예술미학총서’도 마침표
장자 2, 3
장자 지음, 이강수·이권 옮김/길·각 권 3만5000원

중국 미학사-상고 시대부터 명청 시대까지
장파 지음, 신정근·모영환·임종수 옮김/성균관대학교출판부·6만원

“‘도가도 비상도’. ‘도를 도라고 할 수 있으면 이미 도가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고려대 철학과 학생이었을 때 박희성 교수라고 미국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수업 시간에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이 유명한 구절을 이야기했어요. ‘서양 고대 신비주의에도 비슷한 사상이 있다. 서양과 동양이 통하는 지점이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관심이 생겨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5일 경기도 부천시 자택에서 만난 이강수 전 연세대 교수(철학과)는 자신의 50년 노장사상 연구라는 큰 그림의 첫 획을 그리던 때를 이렇게 떠올렸다. 최근 79살의 나이로 <장자>를 완역 출간한 이 전 교수는 <장자>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이후 평생 노장사상 연구에 매진해온 전문가다. 유학, 중국 문학, 종교학 등 비전공자의 <장자> 번역이 주종을 차지한 상황에서, 50년 넘게 <장자>를 연구하고 가르쳐온 이 전 교수의 <장자> 번역 작업은 학계 안팎의 관심을 끌어왔다.

하지만 번역은 예상 밖으로 길어졌다. 그가 1권 출간 직후인 2005년 뇌경색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2005년 1월에 ‘내편’을 1권로 출간한 뒤, 그해 ‘외편’과 ‘잡편’을 각각 2, 3권으로 완간하려던 계획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뇌경색은 2012년에 또 찾아왔다. 몸 상태가 좋아졌을 때를 틈타 제자인 이권 박사와 함께 조금씩 번역을 진전시키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14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다. “원래 우리 집안에 고혈압이 있어요. 선친도 고혈압으로 돌아가셔서, 나도 일찍부터 약을 먹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않았어요. 한 번 쓰러진 뒤에도 약 먹는 걸 소홀히 해서 또 쓰러졌지. 내가 왜 그렇게 오만했는지 몰라.” 옆에 있던 이 전 교수의 아내는 “이 사람이 노장사상에 너무 젖어 있어서 그래요. 이 사람이 자기 철학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한 것 같아요”라며 웃으며 타박을 놓았다.

최근 <장자> 내편, 외편, 잡편을 모두 번역해 낸 이강수 전 연세대 교수는 “이번 장자 번역에는 수많은 주석서와 함께 석사 학위를 받은 국립타이완대학에서 유학하며 들었던 강의 노트까지도 참고했다”고 말했다.
최근 <장자> 내편, 외편, 잡편을 모두 번역해 낸 이강수 전 연세대 교수는 “이번 장자 번역에는 수많은 주석서와 함께 석사 학위를 받은 국립타이완대학에서 유학하며 들었던 강의 노트까지도 참고했다”고 말했다.
이 전 교수는 <장자>를 3가지 정신으로 요약했다. 비판, 조화, 초연. “장자는 유학의 핵심인 인의예지도 비판했어요. 기존의 도덕 규범의 색깔이 칠해졌달지, 순수하지 않다고 본 것이지. 그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인데, 시켜서 하는 것은 곧 자연의 반대라는 거지요. 다음으로 초연하단 것은 물질적인 것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제1편 ‘소요유’에서 ‘대붕이 구만리 상공으로 치솟아 올랐다’는 말은 곧 물질세계를 초월한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조화 정신이란 사람들과 어울려 자기나 남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해요.”

대붕이 아니라 수많은 비행기가 구만리 상공을 날아다니는 현대에 <장자> 읽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에 그는 <장자> 외편 중 ‘천지’편을 펼쳤다. 두레박을 사용해 우물물을 길으란 제안에 “기계를 사용하는 자의 마음엔 (…) 도가 실리지 않는다”라며 거절한 농부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다. “장자는 과학기술의 발달을 우려했습니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기에, 결국 인간이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환경 문제에 장자가 지혜를 주는 것이지요.” 이뿐 아니다. “우리나라에 유학의 폐해가 많아요. 그중 대표적인 게 가부장제이지요. 하지만 장자는 모든 사람의 본성은 똑같다고 봤어요. 장자는 가부장제를 극복하는 데도 가르침을 줍니다.”

그는 몸은 불편하지만 여전히 공부에 정진하고 있다. 하루에 적어도 8시간씩 번역과 연구에 몰두한다. “몸에 자신이 없어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몸이 감당해주느냐가 문제지요.” 그가 3년 전부터 번역해온 <주역>은 올해 안에 지식산업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신정근(사진) 성균관대 유학대학 학장과 여러 연구자들이 함께 번역해온 ‘동아시아예술미학총서’가 최근 전 6권으로 출간됐다. 사진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제공
신정근(사진) 성균관대 유학대학 학장과 여러 연구자들이 함께 번역해온 ‘동아시아예술미학총서’가 최근 전 6권으로 출간됐다. 사진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제공
한편, 최근 중국 사상 분야에서 또 다른 대형 번역 기획이 완료돼 눈길을 끈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 학장(동양철학)이 이끄는 ‘동아시아예술미학총서’가 전 6권으로 완간된 것. 신 교수가 2000년부터 총서를 구상한 뒤 동료 학자·제자들과 함께 연구모임을 만들어 공동 번역을 시작한 지 19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2013년 출간한 장취친의 <중국 현대 미학사>, 푸전위안의 <의경>, 왕카이의 <소요유, 장자의 미학>, 왕전푸의 <대역지미, 주역의 미학>은 600쪽가량의 분량이고, 지난해 말에 출간한 천옌 등이 쓴 <동아시아 미의 문화사>와 이번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장파의 <중국 미학사>는 모두 1000쪽이 넘는 대작이다.

<중국 미학사>는 장파 저장사범대학 인문학원 교수의 대표작으로 고대부터 근대까지 중국 예술미학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했다. 총서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 총서 1권으로 정했지만 예상보다 번역이 늦어져 가장 마지막에 출간됐다. 그동안 1판이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이 책은 2판을 번역했다. 신 교수는 옮긴이 서문에서 “시대별로 각광을 받은 미학의 장르를 날카롭게 조망하고 미학의 흐름을 주도한 조정·사인·민간·시민 중 사인(士人)의 특성을 깊이 끄집어내며, 심미 태도가 깊어지는 과정을 보기의 관(觀), 맛보기의 미(味), 깨닫기의 오(悟) 등으로 포착하기도 했다. 또 그는 중국 미학의 근원으로 유가·도가·굴원·선종(불교)·명청 사조를 꼽으면서도 다섯 가지가 분류하고 합류하는 지점과 특성을 파헤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임 번역자인 신 교수가 다양한 문헌들을 참고해 상당한 분량의 주를 달아 편역에 가까운 번역이라고 출판사 쪽은 설명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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