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떠난 도시에서 제인스빌 이야기에이미 골드스타인 지음, 이세영 옮김/세종서적·1만8000원
미국 중북부 위스콘신주 남부의 제인스빌. 6만3천여명이 사는 작은 도시다. 만년필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파커 펜 회사가 1888년 설립됐고, 제너럴 모터스(GM·지엠)의 가장 오래된 자동차 생산 공장이 있던 곳이다. 지엠은 이 공장에서 1919년부터 트랙터, 1923년부터 회사의 얼굴인 쉐보레를 생산해냈다. 소녀들은 엄마를 따라 파커 펜에, 소년들은 아버지를 따라 지엠 공장에 취직했다.
1970년대 지엠 공장에서만 7천여명의 노동자가 일했다. 전형적인 제조업 기반 소도시였다. 지엠 공장은 제인스빌의 생활 리듬을 지배했다. 라디오 방송국은 뉴스 시간을 공장의 근무 교대 주기에 맞춰 편성하고, 주민들은 부품을 실어 오고 완성차와 트럭 등을 싣고 가는 열차의 운행 시간에 맞춰 시내 외출 계획을 짰다. 식료품 값은 지엠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폭에 맞춰 상승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2월23일 공장이 폐쇄되자 제인스빌의 삶은 뿌리째 흔들렸다.
2008년 12월23일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의 지엠 자동차 공장이 폐쇄되던 날, 이 공장에서 마지막으로 생산된 검은색 타호가 조립라인 끝에 이르는 모습을 노동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제인스빌 이야기>는 바로 이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제인스빌/로이터 연합뉴스
<제인스빌 이야기>는 제인스빌의 지엠 자동차 공장이 폐쇄된 이후 5년 동안 제인스빌 사람들이 겪은 얘기를 생생하게 담은 르포르타주다. 저자인 에이미 골드스타인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워싱턴포스트>의 기자. 그는 해고 노동자와 가족, 사회복지사, 교육자, 은행가, 기업가, 정치인 등을 만나 지엠 공장 폐쇄 이후 제인스빌 사람들이 마을과 자기 자신을 되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냈다.
금융위기 때인 2008~2009년 제인스빌과 인근 지역에서 9천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평화로운 중산층 도시에 닥친 재난이었다. 사람들은 “계층의 사다리 아래로 밀려났다.” 지엠 공장에서는 시급 28달러를 받았지만, 그런 양질의 일자리는 이제 없었다. 제인스빌의 노동자와 가족들은 시급 10달러 남짓의 일자리를 구하거나, 전문대학에 들어가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치고 새 일자리를 찾거나, 아니면 ‘지엠 집시’가 되어야 했다. 지엠 집시는 제인스빌을 떠나 다른 지역 지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뜻한다.
13년간 지엠 공장에서 일했던 제러드 휘태커의 가족은 모든 구성원이 나서 생계비를 마련한다. 제러드는 일자리를 전전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혈소판 헌혈을 하고 돈을 받기도 한다. 고교생 쌍둥이 두 딸은 아버지의 실직 사실은 안 뒤 아르바이트를 두세 개씩 하며 가족의 식료품비를 댔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휘태커 가족처럼 제인스빌 사람들이 지엠 공장 폐쇄 이후 서로 돕고 배려하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지엠 공장에 다닐 때는 베풀고 살았던 노동자와 가족들은 처음에는 베풂을 받는 것을 거부하지만 차차 익숙해지고 고마워한다.
제인스빌의 지엠 공장 노동자였던 맷 워펫은 고심 끝에 지엠 집시를 택했다. 자동차로 네 시간 반 거리인 인디애나주의 포트웨인 지엠 공장에서 일하고 금요일 밤이면 동료들과 함께 제인스빌로 돌아왔다가 다시 월요일 아침에 차를 몰고 포트웨인으로 간다. 약 1600㎞ 떨어진 텍사스주 알링턴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도 혼자 생활하면서 악착같이 제인스빌로 돌아왔다. 제인스빌 사람들은 제인스빌을 사랑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집시를 선택한 건 제인스빌 주변에는 지엠 공장에 견줄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엠에 차량용 좌석을 납품하는 업체에서 일했던 두 여성 크리스티 바이어와 바브 본은 재교육을 받고 새 일자리를 찾기로 한다. 둘은 블랙호크 기술전문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형사행정학 과정을 마치고 교도관으로 새 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의 얘기는 제인스빌 지역신문에 이른바 ‘성공 스토리’로 보도된다. 하지만 바브는 교도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퇴직하고, 크리스티 역시 비극적으로 생을 끝낸다.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의 폐쇄된 지엠 자동차 공장.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세종서적 제공
책에서 충격적인 대목은 바로 이 재교육 문제다. 실직자를 재교육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도와주는 정책엔 정치적 견해 차이를 떠나 누구나 동의한다. 지은이는 이를 “재교육 복음”이라고까지 한다. 블랙호크 대학도 지엠 공장 폐쇄 이후 실직자들을 위해 88개의 강의를 신설했고, 개인강사가 부진한 학생한테 추가 수업도 했다. 그런데 지은이가 위스콘신대학 조사기관과 함께 한 설문조사와 직업 재교육에 대한 분석결과는 재교육의 효과를 의심케 한다. “직업 재교육은 제인스빌은 물론 그 주변 지역에서도 구직 기회나 임금을 늘리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됐다. 이는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시기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실직한 뒤 학교에 가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친 이들의 취업률은 학교를 다니지 않은 실직자보다 낮았고, 재교육을 받으러 학교에 간 해고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해고 노동자들보다 구직 후에도 더 낮은 급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 재교육은 아무런 효과가 없단 말인가? 지은이는 2012년 10월 <워싱턴포스트> 오피니언 지면에서 이를 설명한다. 다른 일자리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재교육을 받을 필요 없이 재취업을 했다. 반면 고용주들이 덜 선호하는 해고자들이 대학에 진학했을 가능성, 재교육의 효과가 더디게 나타날 가능성, 재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일자리들을 먼저 차지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는 “재교육이 지금보다 더 잘 이뤄져야 한다. 2년제 대학과 일자리 수요 사이의 연계가 더 긴밀해져야 한다. (…)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은 일자리 맞춤형 족집게 교육으로도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앤서니 캐너베일 조지타운대 교육인력센터장은 “직업훈련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일자리가 직업훈련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반대로 생각한다”고 짚었다.
책은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갈수록 당파적으로 변해가는 미국 정치가 “두 개의 제인스빌”을 만들어 놓는 과정도 전한다. 위스콘신은 2016년 대선에서 32년 만에 처음으로 공화당에 다수표를 던졌다. 제인스빌만큼은 다수가 민주당 후보한테 표를 주었다. 그러나 민주당 후보 지지율은 2012년 대선 때보다 10%포인트 떨어졌다. ‘러스트 벨트’가 공화당으로 넘어가면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책은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한국에서도 출간 전부터 주목을 받아 왔다. 거제와 군산 등에 닥칠 모습을 볼 수 있어서다. 제인스빌 이야기는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지난 몇 해 동안 명백해진 사실은 외부의 그 누구에게도 이 도시의 중산층을 재건하기 위한 묘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인스빌 이야기는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