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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생명을 알 때까지 대화하라

등록 2019-03-22 06:00수정 2019-03-25 17:03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

김동규·김응빈 지음/문학동네·1만4000원

“너는 ‘맹물학과’ 나와서 뭐할 거냐?” 생물학자 김응빈이 30여년 전 대학 새내기일 때 종종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세상이 달라졌다. 유전자변형식품(GMO)이 밥상을 채우며, 인간 배아에 유전자 편집을 적용한 ‘맞춤 아기’(designer baby)까지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생물학도의 밥벌이를 우려하던 시대는 물러나고, 생물학의 움직임이 전 인류와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바이오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의 지은이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물학에 “깊고 두터운 사유에서 나올 수 있는 철학적 비전”이 절실하다고 본다. 철학도 “당대 가장 활력적인 지적 영역과의 조우를 통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철학자 김동규(왼쪽)와 생물학자 김응빈. 문학동네 제공
철학자 김동규(왼쪽)와 생물학자 김응빈. 문학동네 제공
책은 2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미토콘드리아, 바이러스를 비롯한 미생물과 면역, 유전자 복제, 기억 등 생명 현상을 통해 생물학과 철학의 접점을 찾는다. 흔히 생물들은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먹고 먹히는 관계’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무한경쟁’만이 모든 생명의 ‘운명’인 것처럼 체념하기에 딱 좋다. 하지만 두 지은이는 생물이 처음 생겨났을 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는 어떤 미시적 삶의 모습에 ‘공생 관계’도 존재함에 주목한다. 가령 미토콘드리아에 세포벽이 없는 건 “피식자가 보내는 ‘생물학적 비움과 내줌’의 몸짓에 포식자는 ‘생물학적 포용과 인정’으로 화답”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북대서양 한가운데 바다에 사는 미생물 ‘펠라지박터 유비크’는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넉넉히 만들어 주변과 나누는 ‘포트럭 파티’를 즐기며 번성한다.

지은이들은 “공생 이론이 서양의 주류 과학계에서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원인 중 한 가지는 ‘서양의 경쟁 숭배 문화’에 있다고 지적한다. 서양 현대사에서 경쟁을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공생을 공산주의의 이념과 짝지은 정치 이데올로기의 영향도 있다. 생명 현상에서 드러나는 공생 관계에 대한 지식과 이론이 더 널리 전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2부에서 지은이들은 국내외 동물 담론을 훑으며 생명에 대한 탐구를 심화한다. 먼저 철학과 과학의 인간중심주의, 환원주의를 성찰한다. 생명의 비밀은 사랑, 자유, 진리로 정리된다. “상대적으로 생명에 가장 근접한 개념이 사랑이고, 사랑이 전제된 자유만이 자기중심성을 벗어날 수 있으며, 아집과 망상으로부터 자유로울 때에만 진리를 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결론이 ‘생명은 사랑이자 미지의 X’로 맺어지는 데서, 두 지은이의 매력이 폭발한다. “사랑은 생물학이나 철학이 기피하는 답일 수 있습니다. 고매한 학문 영역의 전문용어가 아니라 닳고 닳은 일상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는 전문용어 뒤에 숨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생명의 진화 과정이 곧 사랑의 역사”라고 본다.

책은 두 지은이의 대학 강의에 바탕을 뒀다. 철학자 김동규와 생물학자 김응빈은 2012년부터 연세대학교 학부 교양 강의 ‘활과 리라’를, 2013년부터 대학원 강의 ‘메타비올로기아’를 개설해 학문 간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바이오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을 위한 스토리텔링 생물학”이라는 수업 소개가 알맞다.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www.kmooc.kr)에서도 강의를 볼 수 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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