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지나 자시엔스카 지음, 김학영 옮김/글항아리사이언스·1만9800원 1960년대 영국의 의학연구 단체들은 아프리카 감비아 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장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태어난 지 1년 안에 사망할 확률이 높은 저체중아 출생을 줄이려고 임산부들의 영양 공급을 확충했다. 단백질을 비롯한 고칼로리 영양소를 충분히 매일 제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신생아의 체중 증가는 미미했다. 출산 뒤 수유기 산모들에게 제공된 영양식도 젖의 질이 좋아지는 데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바뀐 게 없지는 않았다. 보충식을 받는 여성들의 다음 번 임신이 더 빨라졌다. 여성의 몸에 축적된 영양분이 현재의 생식을 돕는 게 아니라 미래의 생식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이다. 개발도상국 건강 복지에 기여하고자 한 선진국의 ‘박애주의’는 출산주기를 앞당기고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만 늘림으로써 오히려 피해를 준 셈이다. 이 책은 출산이라는 특수한 과정을 겪는 여성의 몸을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밝힌다. 앞의 사례는 생식의 관점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의 몸보다 훨씬 복잡하게 진화했다는 걸 보여준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유방암 등 여성암을 유발하지만 골다공증이나 우울증을 막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출산에서 건강상태만큼 중요한 건 스스로 임신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교육과 문화 수준이다. 비슷한 시기 과테말라 여자 아이들에게 영양을 공급했던 결과를 추적 관찰했을 때 보충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의 발육상태가 좋아지고 초경, 첫 출산의 연령도 2년 가량 빨라졌지만 초등교육을 제대로 마친 여성들의 첫 출산 평균 연령은 도리어 4년 이상 늦어졌다. 여성 건강 증진을 위해서 복잡다단한 몸의 진화와 함께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빼놓을 수 없다는 의미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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