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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제국주의 눈에 비친 100년 전 동아시아의 누추함

등록 2019-03-22 06:02수정 2019-03-22 19:49

주르날 제국주의-프랑스 화보가 본 중국 그리고 아시아
자오성웨이·리샤오위 엮음, 이성현 옮김/현실문화·4만8000원

“프랑스의 아이들은 그 수가 보잘 것 없지만 중국의 아이들은 부양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만약 언젠가 천자의 신민들이 자기 나라 어디에서도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들 중국인이 알제리의 메뚜기떼처럼 유럽 전역을 뒤덮은 채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멸망시킬 것이라고 사람들은 단언한다.”

프랑스 신문 <르 프티 주르날>은 1891년 12월19일치에 중국인들이 서양 선교사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섬뜩하게 묘사한 화보를 실으며 불안함을 숨기지 않았다.

<르 프티 주르날>(1900년 7월8일)에 실린 서태후.
<르 프티 주르날>(1900년 7월8일)에 실린 서태후.
아시아에서 취할 이권에 눈이 벌게진 서양 제국주의자들에게 19세기 후반의 중국은 이빨 빠진 호랑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워낙 덩치가 큰 호랑이라 어느 누구도 한입에 꿀꺽 삼킬 순 없는 존재였다. 불량한 위생상태, 관료들의 부정부패, 민중의 비참한 삶은 인종차별의 렌즈를 거쳐 비하와 멸시의 감정을 자아냈으나, 유구한 역사와 광활한 영토를 지닌 문명국의 저력을 무시하기도 쉽지 않았다.

제2차 아편전쟁 직전인 1850년부터 중일전쟁 전후인 1937년까지 프랑스 언론 등이 발행한 화보 부록을 묶은 <주르날 제국주의>는 이 복잡미묘한 서양인들의 속내를 담았다. 외국인을 살상하는 의화단원들의 무도함을 강조하려고 했는지, 칼과 몽둥이를 든 중국인들은 동양인답지 않게 유럽인들과 체구가 거의 비슷하다. 화보 옆엔 “중국인은 가장 교활한 자들이다. 그들의 정부는 약하고 무능해 영토 할양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는 기사가 붙어 있다.

러일전쟁을 풍자한 <르 프티 파리지앵> 화보(1904년 4월3일)
러일전쟁을 풍자한 <르 프티 파리지앵> 화보(1904년 4월3일)
러일전쟁(1904~1905)을 소재로 한 일련의 삽화엔 프랑스의 동맹이자 대제국인 러시아가 신흥국 일본에 패배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혼란스런 감정이 담겨 있다. 전쟁 초반엔 ‘백인 어른’의 주먹 한 줌도 안 되는 ‘꼬마 황인종’이 겁없이 덤비는 모습으로 풍자했다가 러시아의 패색이 짙어지자 마지못해 일본의 국력을 인정한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고전하는 상황을 묘사한 <르 프티 파리지앵>(1905년 8월20일).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고전하는 상황을 묘사한 <르 프티 파리지앵>(1905년 8월20일).
타자의 눈동자에 비친 비루한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유쾌하진 않지만, 자기 객관화엔 도움이 된다. 중국 역사학자인 마융은 이 책의 가치를 짚으며 소동파의 시구를 인용했다. “내다보면 산줄기이되 올려보면 봉우리니, 서 있는 자리의 원근고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이다. 여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함은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진실의 편린을 조각맞춤하려면 시점의 전환이 불가피한 법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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