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 지음/알마·1만1500원 김보영 작가(사진)의 <천국보다 성스러운>은 에스에프 형식에 담은 페미니즘 우화로 읽힌다. 이야기는 두 축으로 진행된다. 퇴직한 홀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여성 영희의 이야기가 한 축이고, 영희가 잠자리에 들며 상상하는 이야기들이 다른 한 축이다. 영희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모두 다섯인데, 이 가운데 앞쪽 네 이야기의 허두에는 똑같이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소설의 주제와 연결되는 문장들이다.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습니다. 그 신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영희의 삶은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쉰 살이던 10년 전 퇴직한 아버지가 텔레비전 리모콘을 벗 삼아 시간을 죽이는 동안, 영희는 낮이면 밖에서 일을 해 돈을 벌고 퇴근해서는 아버지의 밥을 차리는 등 집안일을 해야 한다. 아버지는, 가사노동은 여자 몫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하루를 온전히 홀로 생존하지 못하는” 그는 딸을 안팎으로 착취하며 구차한 목숨을 이어갈 따름이다. 영희의 머릿속 이야기에는 신이 나온다. 그러나 그 신은 영희 아버지와 다르지 않은 존재. 첫 번째 이야기에서, 지상에 질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신은 “남자는 우수하고 여자는 열등하다”는 가르침으로 ‘고추 지상주의’를 부추긴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200년 만에 냉동상태에서 깨어나, 로봇들만 남은 세상의 신으로 부활한 인간 남자가 역시 영희 아버지를 닮은 ‘뻘짓’을 일삼다가 다시 죽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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