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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미국 명문 고교생들의 ‘문학 스카이캐슬’

등록 2019-04-05 06:01수정 2019-04-05 19:58

토바이어스 울프 소설 ‘올드 스쿨’
“혈연과 계급에서 탈출할 기회, 문학”
스탠퍼드대 제자 타블로가 추천사 써
올드 스쿨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문학동네·1만5000원

토바이어스 울프(74)의 2003년작 소설 <올드 스쿨>은 미국의 어느 명문 사립 남학교를 무대로 삼는다. 돈 많고 권세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 모인 이곳은 유난히도 문학적 전통과 분위기가 승한 학교다. “학교는 (…) 특히 글쟁이들을 아꼈”고 “이곳이 문학적 공간이라는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소설은 이 학교의 졸업반 학생 ‘나’의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나’는 사실 유대인 핏줄을 받은데다 권력도 경제력도 변변치 않은 집안 출신. 그는 자신의 그런 계급적 배경을 감추고 친구들과 어울린다.

“계급은 실재했다. 한 소년의 계급은 입은 옷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그 옷을 입는 방식, 여름방학을 보내는 방식, 할 줄 아는 스포츠의 종류, 돈 이야기가 나올 때나 야심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날 때 보이는 냉담한 태도를 통해 드러났다.”

앞서 말했듯 이 학교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문학적 열기. 학교는 일 년에 세 번 유명 작가들을 초청해 강연 등의 행사를 치르고, 그때마다 학생들이 제출한 시나 소설 가운데 ‘우승작’을 뽑아 해당 학생과 작가가 개인면담을 할 기회를 주었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습작을 하고 작가를 꿈꾸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내가 그랬듯 다른 소년들도 작가가 된다는 건 혈연과 계급의 문제에서 탈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작가들은 일상의 위계 서열 바깥에서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특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권력을 얻었다. 체제와는 한 발 거리를 둔 채 그 체제에 대한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그럼으로써 체제를 재단할 권력.”

다소 낭만적이고 과장돼 보이는 이런 생각은 소설 배경이 1960대 초이어서일까, 아니면 아직 순수한 청소년의 관점이 반영되어서일까. 어쨌든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가깝게는 초청 작가와 개인면담 기회를 얻고자, 멀게는 장차 미국 문단의 중심으로 진입하고자 습작에 열중하며 서로를 견제하기도 한다.

<올드 스쿨>의 미국 작가 토바이어스 울프. 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문학동네 제공
<올드 스쿨>의 미국 작가 토바이어스 울프. 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문학동네 제공
소설에서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와 소설가 아인 랜드가 이 학교를 방문하고, 당시 아마도 세계 최고 인기 작가였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초청 역시 추진된다. 프로스트와 랜드가 방문해서 행한 강연과 질의응답은 이 학교 학생들의 문학적 수준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프로스트가 엄격한 율격에 입각한 시를 쓰는 것을 두고 ‘나’의 친구 제프 퍼셀은 이렇게 말한다. “운율 자체가 헛소리야. 운율은 결국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갈 거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모든 게 조화롭고 질서 있게 된다는 거지.”

퍼셀과 비슷한 취지로 어느 교사가 던진 질문에 프로스트는 이렇게 답한다. “(<일리아스>에 나오는)아킬레우스의 비탄이 생각나는군요. (…) 그런 비탄은 오직 형식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습니다. (…) 형식이 전부입니다.”

‘나’는 아인 랜드의 소설 <파운틴헤드>를 네 번이나 되풀이 읽을 정도로 그에게 빠져들지만, 막상 그의 초청 강연을 듣고는 그가 주창하는 영웅주의의 실체를 깨닫고 환멸을 느끼며 그에게서 멀어진다. “영웅의 삶에는 아이를 낳거나 집안일을 하고 평범하게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노력을 기울일 시간이 없는 것 같았다. (…) 랜드 덕에 나는 상처를 경멸하는 작가와 그 상처를 삶의 기반이 되는 사실로 받아들이는 작가 사이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이런 대목은 청소년을 주인공 삼은 이 작품이 성장소설의 성격 또한 지녔음을 알게 하는데, 주인공 ‘나’의 더 큰 성장과 그를 위한 시련은 소설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과 그로 인한 퇴학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 소설 <올드 스쿨>을 통해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토바이어스 울프는 1945년 미국 버밍엄에서 유대계 아버지와 가톨릭교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설 주인공처럼 명문 사립학교에 입학했지만, 성적증명서와 추천서를 위조한 것이 발각되어 퇴학당했다. 1981년 첫 단편집 <북미 순교자의 정원에서>로 오헨리문학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펜/포크너상, 국가예술훈장 등을 받았으며 현재 스탠퍼드대학에서 문학과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이 학교에서 그의 지도를 받은 가수 타블로가 이번 책에 추천사를 썼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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