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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금 이곳에서 탐문하는 바우하우스의 신화

등록 2019-04-12 06:00수정 2019-04-12 19:30

바우하우스 탄생 100주년 맞아
국내 전문가 18명 연구서 펴내
‘숨은 주인공’ 여성들 업적도 조명
바우하우스
김종균 등 18명 지음/안그라픽스·3만원

“공예가와 미술가 사이에 가로놓인 높다란 장벽을 만드는 계급 차별을 없애고 새로운 공예가 집단을 만들자. 우리 다 함께 건축과 조각과 회화를 하나의 통일 속에 포용하고 또 언젠가는 새로운 신앙의 상징처럼, 수많은 일꾼들이 손으로부터 하늘나라로 올라갈 새로운 미래의 건축을 희구하고 상상하며 창조하자.”

1919년 독일 베를린 출신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는 바우하우스 창립 선언문을 통해 원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그로피우스의 선언이 담긴 리플렛 표지엔 독일 표현주의 화가인 라이오넬 파이닝어가 거친 질감의 목판화로 대성당을 새겨 공예와 예술이 통합된 새로운 건축예술을 은유했다.

바우하우스에서 열린 공연이 끝난 뒤의 모습. 오스카 슐레머가 디자인한 마스크 등이 무대에 선보였다. ⓒBauhaus Dessau Faiundation, 안그라픽스 제공
바우하우스에서 열린 공연이 끝난 뒤의 모습. 오스카 슐레머가 디자인한 마스크 등이 무대에 선보였다. ⓒBauhaus Dessau Faiundation, 안그라픽스 제공
독일 최초의 민주 헌법이 기초된 독일 중부의 도시 바이마르에서 바우하우스가 탄생한 지 100년. ‘공예+예술’을 넘어 예술과 기술을 통합한 산업디자인과 국제주의 건축양식의 산파 역할을 한 바우하우스는 오랫동안 ‘신화’로 존재해왔다. 독일은 올해 100주년을 기념해 바우하우스가 거쳐 간 바이마르·데사우·베를린을 비롯해 독일 전역의 바우하우스 유산을 살펴보는 ‘그랜드 투어’를 열고 있으며, 각지에서 다양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독일의 떠들썩한 분위기에 비해선 의외일 정도로 조용한 한국에서도, 바우하우스 100년을 기념하는 소중한 결과물이 나왔다. 그래픽디자인·산업디자인·인테리어·건축·조각·미학·예술사·전시기획·퍼포먼스 등 바우하우스가 담당했던 영역과 거의 일치하는 18명의 전문가가 모여 바우하우스를 입체적으로 분석한 책 <바우하우스>다. 바우하우스가 ‘2019년 지금, 한국 이곳’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색하고자 고영란(한성대 교수)·신희경(세명대 교수)과 디자인전문출판사 안그라픽스가 주축이 돼 2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한다.

미국 유학파로부터 간간이 전해지던 바우하우스 관련 정보가 한국인들에게 집대성돼 알려진 것은 박정희 정부로부터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혔던 해직 교수 고 김윤수가 번역한 한스 마리아 빙글러 원작 <바우하우스>(1978, 미진사)였다. “바우하우스는 학교가 아니라 하나의 이념이었다”로 첫머리를 여는 이 책을 보면서 새로운 예술교육,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던 한국의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오스카 슐레머의 마스크를 쓴 여인이 마르셀 브로이어가 디자인한 의자에 앉은 초상(1926). ⓒBauhaus Dessau Faiundation, 안그라픽스 제공
오스카 슐레머의 마스크를 쓴 여인이 마르셀 브로이어가 디자인한 의자에 앉은 초상(1926). ⓒBauhaus Dessau Faiundation, 안그라픽스 제공
벨기에 건축가 반데 벨 데가 이끌던 ‘바이마르 그랜드 두칼 예술공예학교’와 ‘바이마르 미술아카데미’를 통합해 만들어진 바우하우스는 유럽을 휩쓴 혁명과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생겨나 운명을 같이했다. 1918년 11월 혁명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이 발걸음을 뗀 시기에 생겨났고 나치의 부흥과 함께 정치적 탄압과 재정난에 시달리다 나치가 집권해 히틀러의 제3제국이 수립된 1933년 문을 닫았다. 당시는 1차 대전 전후 궁핍한 시기였으나 러시아 혁명의 물결과 사회주의적 이상, 진보에 대한 갈망이 넘치던 시기였고 바실리 칸딘스키·파울 클레 등 각국의 뛰어난 교수진이 포진했다. 비록 학생들이 학교 작업실에서 기숙하고 채소밭을 가꾸며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조건이 열악했으나 요하네스 이텐-라슬로 모호이너지-요제프 알베르스 등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기초교육, 창의적 예술교육과 실습을 결합한 공방 중심의 운영, 브라운과의 제품디자인 계약 등 성공적 산학협력의 모델을 구축했다.

빛과 함께 그늘도 있었다. 1대 교장인 발터 그로피우스(1919~1925)-2대 교장 한네스 마이어(1928~1930)-3대 교장 미스 반데 로에(1930~1933)에 이르기까지 14년 동안 예술주의와 산업주의 간의 노선 갈등으로 교수들의 반목이 계속됐다. 기능주의적 이상을 내세웠던 마이어는 반대파에 쫓겨나다시피 했고 이후 ‘나의 추방’이라는 글을 통해 “예술이 삶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격렬히 저항하기도 했다.

개교 당시 바우하우스의 입학 법규는 ‘연령 및 성별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명시했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성평등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많은 엘리트 여성들이 각지에서 모여들자 뜻밖의 ‘여초 현상’에 당황한 그로피우스는 직조기술을 주로 배우는 ‘여성학과’를 급조해 여학생을 이곳으로 몰아넣었다. 여학생에게 문호를 개방한 공방 수는 제한적이었으며 뚜렷한 이유 없이 여학생들의 공방 입학을 거부하기도 했다. 심지어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리 2차원적 시야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교수도 있었다.

<바우하우스>에 실린 18편의 글 중엔 2편(고영란·진휘연)이 바우하우스 전설에 가려져 있던 여성들의 업적을 조명한다. 직조공방을 산업직물연구실로 키워낸 군타 슈츨, 후일 바우하우스 디자인제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금속디자이너 마리엔느 브란트, 텍스타일의 물성에 대한 이해가 탁월했으나 1944년 아우슈비츠에서 숨진 오티 베르제르 등이 바우하우스의 숨은 주인공이다.

바우하우스 선언문 리플렛에 실린 리이오넬 파이닝어의 목판화 <미래의 대성당>(1919). ⓒBauhaus Dessau Faiundation, 안그라픽스 제공
바우하우스 선언문 리플렛에 실린 리이오넬 파이닝어의 목판화 <미래의 대성당>(1919). ⓒBauhaus Dessau Faiundation, 안그라픽스 제공
“바우하우스의 위상은 역사적 사실보다 신화적 해석에 따른 부분이 크다”(데얀 수직 런던 디자인뮤지엄 관장)는 날 선 지적도 있지만 바우하우스는 영국 에이에이(AA)스쿨 등 당대 쟁쟁한 학교들을 제치고 예술교육의 기념비로 자리잡았다. 여기엔 출중한 교수진과 학생들, 뚜렷하고 명쾌한 교육이념 등 바우하우스 자체의 특성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의 발호와 강제폐교 때문이기도 하다. 바우하우스 출신들은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울름조형대학을 비롯해 미국의 뉴바우하우스·블랙마운틴칼리지 등에서 활동하며 뛰어난 제자들을 길러냈고, ‘사라진 이상’을 향한 노스탤지어가 강화된 측면도 크게 작용했다.

이번에 ‘종합세트’ 성격의 바우하우스 전문서를 펴낸 안그라픽스는 이달 말께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가제·안영주 지음)라는 책을 출간해 젠더적 관점에서 바우하우스 출신 여성들의 학교생활과 업적 등을 집중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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