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지음/서울셀렉션·1만5800원 기자 생활 13년이 넘어갔을 때 저자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 그 후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 본으로 유학을 가 몇 년간 그곳에서 눌러 살았다. 그 다음은 부탄으로. 그닥 연관되어 보이지 않는 이곳들을 흐르듯 옮겨가면서 5년여의 타향살이를 했다. 세 나라의 경험을 하나로 묶은 이 책은 언뜻 흔한 외국생활 체험기처럼 보이지만 읽다보면 그림 좋고 미담 넘치는 책들과는 전혀 다른 감흥의 길에 놓여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글들의 주인공은 대부분 ‘나’가 아니라 이웃들이다. 저자는 이웃들의 삶을 깨알같이 탐구한다. 10가구가 사는 연립주택에 ‘빨랫줄’ 전쟁이 벌어졌다. 공동 세탁실에 누군가 빨랫줄을 걸자 ‘극단의 독일인’ 밍크가 “습기를 함유한 천(이하 빨래) 건조 시 건축자재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바, 건조 지탱물(이하 빨랫줄)을 조속히 철거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포문을 열었다. 살림왕 홀거는 이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단체메일을 뿌렸다. 이메일 공방은 지구전이 됐고, 다른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 흐지부지되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발레리가 “빨랫줄에 말리는 것과 건조대에 말리는 것이 건축자재에 먼 차이?”라고 끼어들자 다시 시작된 난타전. 전지구적인 ‘지지고 볶는’ 삶이 착착 감기는 문장들에 스며들어 웃음을 유발한다. 이방인의 시선을 버리지 않는 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파키스탄 등 출신의 친구들과 스위스 회사 경비원 알바를 하다가 단체로 느낀 소외감과 연대감, 이 모든 걸 녹여버린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 오해받아도 괜찮아’라고 토닥이는 위로를 받는 기분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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