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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학의 종언’을 넘는 민중적 상상력

등록 2019-04-12 06:01수정 2019-04-12 19:35

김종철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
블레이크, 디킨스, 파농, 이시무레 등
근대에 맞서 생명 옹호한 작가들 다뤄
대지의 상상력
김종철 지음/녹색평론사·2만원

“우리가 이처럼 문학을 진지하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는 걸,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역사적 실천행위로서 진지하게 문학을 했던 때가 있었다는 걸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합니다. 특히 젊은 평론가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싶은데, 과연 그럴지 모르겠어요. 비평의 언어가 살아 있어야 문학 창작이나 다른 예술도 활기를 띨 텐데요.”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을 낸 김종철 전 영남대 교수를 10일 오후 만났다. 격월간 생태 전문지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영문학자인 그의 전공이라 할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와 소설가 찰스 디킨스, 평론가 매슈 아놀드와 F. R. 리비스 같은 영국 문인들, 프랑스 작가 프란츠 파농과 미국 소설가 리처드 라이트 같은 흑인 작가, 그리고 미나마타 사건을 소설로 쓴 일본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 등 외국 작가들을 다룬 책이다.

김 전 교수는 <시와 역사적 상상력>(1978)과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1999) 같은 평론집을 낸 평론가이지만, 이제 그는 ‘전직 평론가’를 자처한다. 그가 문학에 대한 희망을 접고 생태주의 매체 발행과 그에 관련된 활동으로 방향을 선회한 사정은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책 <문학의 종언>에 소개되는 바람에 새삼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오랜만에 묶는 문학론집에 한국 시·소설에 관한 평론은 전무하고 외국 작가와 작품에 관한 글들을, 그것도 벌써 오래 전에 발표했던 글들을 묶게 된 까닭이다.

“적어도 80년대까지만 해도 문학은 우리 정신의 보고였습니다. 문학을 통해 감수성을 훈련하고 윤리 교육을 받았으며 사상적으로 무장할 수 있었죠. 이 책에서 다룬 작가들은 전 생애를 걸고 자본주의 문명에 맞서 싸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작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요즘 문단 사정은 모르지만, 어쩌다 주변에서 권하는 소설을 읽어 보려다가도 실망해서 접은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작가들이 너무 작아진 게 아닌가 싶어요.”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을 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인간의 내면, 개인의 상처도 물론 엄연한 현실이지만 너무 그런 얘기뿐이고 더 크고 근본적인 이야기가 요즘 문학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을 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인간의 내면, 개인의 상처도 물론 엄연한 현실이지만 너무 그런 얘기뿐이고 더 크고 근본적인 이야기가 요즘 문학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블레이크에서 이시무레까지 이 책에서 다룬 작가들은 “‘근대’의 어둠에 맞서서 ‘삶-생명’을 근원적으로 옹호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었다.”(‘책머리에’) “언제나 ‘억압받고 있는 자들의 해방’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겨냥하고 있었”으며 “억압적 부르주아체제에 대하여 가장 근본적인 비판에 도달한 근대 최초의 지식인·사상가였”던 블레이크, “그 자신의 좁은 노동관이나 세부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으로는 노동계급 혹은 민중 전체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견한” 디킨스의 ‘민중적 상상력’, 그리고 미나마타병에 걸린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리면서도 “생의 근원적인 행복과 풍요에 대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생생한 감각”을 놓치지 않은 이시무레 등에게서 그는 대지에 뿌리내린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과 그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확인한다.

문학의 이런 ‘위대한 전통’이 망실되게 된 배경으로 그가 꼽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역사 허무주의, 그리고 그에 이어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다. 포스트모더니즘만이 아니라 그것이 비판과 극복의 대상으로 삼았던 모더니즘 미학 역시 그의 비판을 벗어나지 못한다. “서양의 전위예술 혹은 모더니즘 미학은 공동체의 정치적·윤리적 관심으로부터 예술을 절연시키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예술의 기능을 흔히 배제한다.” 그가 보기에 모더니즘적 예술 실험은 “실험을 위한 실험, 해소할 길 없는 괴로운 자의식에 의한 자기몰입을 낳았을 뿐, 그 반항은 체제에 대한 어떠한 근본적인 도전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을 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을 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금은 문학 사조 같은 게 내 관심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문학 예술의 위대한 전통을 수립한 작가들은 리얼리스트가 아니었나 싶어요. 역사에 적극적인 자세를 지니고, 인간의 힘으로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은 역시 리얼리스트들이었습니다.”

문학론집에 이어 다음달에는 <녹색평론> 등에 발표한 생태 및 민주주의 관련 글을 모아 책을 낼 예정인 그는 “지금은 전면적인 문명의 전환기이자 인류의 존속이 걸린 위기 상황인데 지식인들과 문인들은 이런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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