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에서 다음 카페 여성 단체 ‘불편한 용기’가 연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 장면.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한국의 온라인 페미니즘을 ‘페미니즘 제4물결’로 볼 수 있으며, 온라인 페미니즘은 인간과 기술이 결합한 네트워크로 새로운 저항적 주체를 만든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한국여성철학회가 연 2019년 봄 정기 학술대회 ‘기술과학시대, 여성철학의 새로운 쟁점’에서 김은주 박사(이화여대)는 ‘제4물결로서 온라인-페미니즘: 동시대 페미니즘의 정치와 기술’이란 발표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발표문을 보면, 외국에서는 2011년부터 초기 온라인 페미니즘의 파급력을 보여준 슬럿워크(Slut Walk)의 사례가 있다. 성폭행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경찰관의 발언에 항의하는 3000명 캐나다 여성들의 시위는 북미 주요 도시와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60개 도시로 확산되었다. 한국은 2015년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과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일어난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을 ‘페미니즘 리부트’ ‘페미니즘 뉴웨이브’ ‘영영페미니스트의 출현’ 등으로 일컫는다.
소셜 미디어는 페미니즘 운동의 소통 방식을 바꾸고 글로컬한 운동으로 확장시키는 장을 제공했다. 발표자는 기술 자체를 사회 내 행위자로 규정하는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에 기반해 소셜 미디어 기술도 사회변화를 일궈내는 비인간 행위자(agency)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여성 파워 유저가 18~29살 사이로 연령대가 낮고 여성의 지위가 낮은 사회일수록 소셜 미디어 사용자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기존 운동방식과 다른 소통과 확장 가능성을 의미한다.
미러링, 집단적 발화, 공격적 발화로 권력이 독식하던 공적 담론의 ‘자리’를 꿰찬 페미니스트들이 쉽게 소규모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 것도 온라인 운동이 오프라인으로 확장된 사례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페미니즘 운동은 의제 설정 목적이 뚜렷한 해시태그로 빠르게 집합하고 정서적으로 연결하여 문제를 사회적인 것으로 끌어올린다. 이런 발화는 기존 언론의 영향력을 뛰어넘는 대안 언론으로도 기능한다.” 온라인 발화 네트워크는 ‘급진적 말하기’이자 일종의 ‘진리 말하기’인 ‘파레시아’(parrhesia·‘모두’와 ‘말하기’의 합성어)를 행한다고 발표자는 설명했다.
지난달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앞에서 연 ‘남성약물카르텔 규탄집회’. 약물범죄를 방관하고 동조한 정부, 여성을 상품화해 재화로 거래한 클럽, 클럽과의 뇌물수수로 피해자의 증언 및 고발을 의도적으로 은닉한 경찰 등을 규탄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인터넷 기술에 힘입어 관계를 변화, 조직하는 힘을 실감하고 그 관계의 공간에서 다시금 활력을 느끼는 ‘정동’(affect)을 체험하면서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은 정치적으로 변모한다. 이를테면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미투 시위 구호)며 ‘정상화하는 권력’에 맞선 투쟁을 일으키게 된다. “온라인 페미니즘은 국가가 제시하는 정상 시민 모델과 그 조건이 내포하는 성차별적이며 가부장제적인 전제들을 문제시하면서 권력 장치를 재배치하고 새롭게 주체화하려는 운동이다.”
페미니즘의 ‘물결’이란 용어가 상투적이며 다양성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주디스 핼버스탬, <가가 페미니즘>)에도 ‘물결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발표자는 보았다. 기술과 연합하는 페미니즘 행동주의가 페미니즘의 지나간 다른 물결을 다시 소환하고 지금의 목소리가 과거와 만나며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점 때문이다.
김은주 박사는 “전례없는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에서 여성들이 새로 계보를 쓰고 공명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고 이를 의미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을 ‘온라인 페미니스트’라고 단일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서로 처한 자기 현장에서 말하는 언어가 불협화음을 이루는 것일 뿐이며 그것이 제4물결의 특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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