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연어>에 이어 다시 바다 생물을 주인공 삼은 ‘어른 동화’ <남방큰돌고래>를 내놓은 안도현 시인. “산골 출신이라서인지 내게는 바다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휴먼앤북스 제공
고향 제주 바다로 돌아간 돌고래 ‘제돌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009년 성산읍 앞바다에서 불법 포획된 뒤 서울대공원으로 팔려가 돌고래 쇼를 하던 제돌이는 2013년 7월 제주 바다에 방류되었다.
안도현 시인이 새로 쓴 ‘어른을 위한 동화’ <남방큰돌고래>(휴먼앤북스)는 말하자면 방류된 제돌이의 그 뒤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인 돌고래 수컷 ‘체체’는 열두 살 나이에 그물에 걸리는 바람에 동물원에서 돌고래 쇼에 동원되었다가 3년 만에 풀려나 제주 바다로 돌아온다. 체체는 붙잡히기 전 할아버지한테 들었던 ‘마음의 야생지대’에 관한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고 어딘지 알 수 없는 그곳을 찾아 혼자서 남태평양까지 모험을 떠난다. 모험 과정에서 체체는 어부와 범고래와 잠수함과 뱀장어와 붉은어깨도요와 바람 등을 만나 그들의 삶을 엿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몸과 마음의 성장을 이룬다. 한편 체체가 모험에 나서기 전에 만나 사랑을 나눈 암컷 돌고래 ‘나리’는 체체와 사이에서 낳은 새끼를 홀로 키우며 체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어른을 위한 동화’를 표방한 이 작품은 1996년 첫 출간 이후 1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연어>를 떠오르게 한다. <남방큰돌고래>의 체체와 나리가 <연어>의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 짝을 떠오르게 하는 데다, 만경강에서 7년을 산 뒤 3천㎞ 떨어진 필리핀 앞바다까지 가서 알을 낳은 뒤 죽음을 맞는 뱀장어 부부 이야기는 <연어>의 저 장려한 마지막 장면을 쏙 빼닮았다.
“<연어>는 시가 아닌 이야기로는 처음 써 본 책이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연어>의 세계가 순수함 그 자체에만 머물렀다면, <남방큰돌고래>에서는 세상이 마냥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지요.”
24일 오후 수원 화성박물관에서 만난 안도현 시인은 “이야기 쓰기는 자료를 모은 다음 상상력을 보태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시 쓰기와는 다른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남방큰돌고래>에서는 나리가 수컷 돌고래들에게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한다든가, 새끼를 유산하기도 하고, 그 뒤 어렵게 낳은 또 다른 새끼를 홀로 키우는 등 돌고래 사회의 ‘어두운’ 면모가 가감없이 그려짐으로써 인간 세상의 비슷한 문제를 환기한다.
‘어른을 위한 동화’ <남방큰돌고래>를 내놓은 안도현 시인이 지난 24일 수원 화성박물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휴먼앤북스 제공
“상처는 살아온 시간의 무늬지.”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을 꿈꿀 줄 알아야 우리는 완전해질 수가 있지.”
“남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하는 일, 그게 내가 자유를 얻는 일이란 걸 깨달았어.”
시인이 쓴 ‘동화’에는 감동적인 이야기와 뭉클한 메시지 말고도 시를 방불케 하는 잠언투 문장들이 풍성하다.
“‘마음의 야생지대’라는 말을 찾아내고서 스스로 기특하다고 생각했어요. 문명이란 게 자연의 야생지대를 뭉개고 이룩된 것처럼, 우리 마음에도 나이를 먹으면서 잃어 가는 야생지대가 있다고 봅니다. 젊은이들이 그런 야생지대를 되찾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해요.”
한편 안도현 시인은 요즘 40년 만의 귀향 준비로 마음이 바쁘다.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고교를 마친 시인은 1980년 원광대에 입학한 이래 전북과 전주를 떠나지 않았다. 아예 그를 전주 사람으로 아는 이도 드물지 않다. 그런 그가 예천 고향 마을에 집을 짓고 올해 안에 이사를 가기로 했다.
“열세 살 때 부모를 떠나 대구에 나가 살기 시작한 때로부터 치자면 근 반세기 만의 귀향입니다. 이제 와서 새삼 웬 귀향이냐는 이들도 있는데, 객지에 나가 살면서도 늘 고향을 생각했어요. 마침 올 봄학기부터 전주 우석대에서 단국대로 직장도 옮겼고 해서 귀향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안 시인은 “귀향을 앞두고 마음이 설렌다”며 “고향에 가면 몇 가지 해 보고 싶은 일들이 있다”고 소개했다.
“우선 예천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 풍습을 다룬 계간지를 올 겨울호나 내년 봄호로 창간하려 합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얘기 중이고 회원들도 모을 계획이에요. 예천 사람들과 시 읽는 모임도 하고, 고등학생들을 모아서 창작교실도 열고 싶어요.”
그는 “나와 관련된 문학관이나 시비는 절대로 반대한다”며 “고향 마을이나 예천에 내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 문학 공원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말했다. “교과서에 실린 시나 소설에 나오는 식물들로 정원을 꾸미고, 식물별 작품 출처를 설명해 놓으면 식물과 문학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학생들의 체험 학습장으로도 쓸 수 있겠구요.”
고향에 돌아가서 펼칠 여러 계획을 소개하는 시인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어렸다. 고향 제주 바다로 돌아간 체체, 또는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모습이 그 얼굴에 겹쳐 보였다. 그는 “그간 객지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고향에 가 살면서 고향 분들에게 돌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09년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내가 대표를 맡은 북녘사과나무심기운동본부가 평양 력포지구 과수원에 사과나무를 심고 왔는데 그 뒤 남북 관계가 끊기는 바람에 사업이 이어지지 못했다”며 “벌써 10년이 지났으니 그때 심은 나무들의 생장도 확인하고 더 많은 사과나무를 북녘땅에 심어 어린이들이 과일을 먹게 하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