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문학적인 취향-한국문학의 정상성을 묻다 오혜진 지음/오월의봄·2만6000원
검붉은 색 표지 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문장부호들. 한눈에 봐도 ‘언어’가 되지 못한 불온한 말들이 뜨겁게 들끓는 듯하다. 지극히 정치적이다.
“표지 디자이너가 이렇게 부호가 많은 책은 처음 본다고 컨셉을 이렇게 잡으셨대요.”
<그런 남자는 없다>(2017)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2018) <을들의 당나귀 귀>(2019) 등의 공저에 이어 첫 단독 저서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을 최근 펴낸 문학연구자 오혜진(35)씨를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저는 등단을 하지 않아서 아는 평론가가 많지 않아요. 기존 평단에서 차별까진 아니더라도 이질적 존재로 인식되죠. 덕분에 글을 쓸 때 위축되는 일도 별로 없고요.”
문학연구자 오혜진씨는 사진 촬영을 하며 활짝 웃지 않았다. 오늘날 각자의 ‘취향’은 정치적으로 경합중이고, 그의 무표정도 정치적 행위이리라 싶었다. 그는 8일부터 여는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개막식에 참석차 곧 출국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관 전시 주제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로, 재미동포 여성작가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 첫문장에서 따왔다. 오혜진은 한국작품 도록에 실리는 해설(‘경계로서의 젠더와 ‘가능한 세계’’)을 썼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588쪽에 이르는 책은 2013년부터 써온 논문, 평론, 칼럼 등을 가려내고 의미를 연장해 묶은 것이다. 방대한 참고문헌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텍스트까지 “미련할 정도로 모두 찾아 읽는다”는 그는 2015년 메갈리아의 미러링,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젊은 여성들의 역동을 보며 담론장에 개입했다. 여성작가, 독자 들은 “‘세대’와 ‘젠더’를 문학 창작 및 향유의 주된 벡터”로 만들었지만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분석된다.
“1990년대 이후 ‘아저씨 독자’들이 떠난 자리에 신경숙, 공지영, 전경린, 양귀자, 김형경, 배수아 등 여성서사와 여성독자가 있었고 뒤이어 2000년대 자폐적 내면의 기록이 등장하면서 한국문학은 서사를 잃었다고 하는데요, 그 80년대에 대한 노골적 옹호와 이데아적 문학상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는 ‘이례적’ ‘일시적’ ‘내면적’ ‘여성적’이라며 1990~2000년대의 문학을 타자화해서 충족하는 586세대의 노스탤지어와 과도한 욕망을 비판해왔다. 여성혁명가들을 ‘누군가의 연인’으로 기입하는 역사의 성별, 90년대 페미니즘 소설은 ‘예술’이 아니라는 비평적 시선, <82년생 김지영> ‘현상’을 만든 대중의 역동과 정치적 의미를 탈각하는 “의도된 무지와 혐오”에 관해 심문한다.
가장 잘 알려진 논문도 그런 문제의식에 기반한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문화과학> 2016년 봄)이다. 2015년 신경숙 소설가의 표절 논쟁을 다룬 이 글을 두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일 잣대로 ‘한국문학사’ 전체를 싸잡아 “개저씨 문학론”으로 폄훼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가장 젠더화된 영역인 문단”(정희진)의 뜨악한 반응이야말로 어쩌면 뻔한 것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의 글을 젊은 여성연구자의 ‘서툰 도전’ 또는 페미니즘의 ‘악의에 찬 적대’라고 일컫는 것 자체가 퇴행적이란 평가도 없지는 않았다.
“‘개저씨’라는 건 제가 처음 쓴 말이 아닌데다, 한국문학 전체를 ‘개저씨 문학’이라는 건 부당하죠. 여성작가와 독자를 제외하고 한국문학 전체를 말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한국문학의 지배적 가치를 구축한 이들의 여성혐오, 소수자혐오, 순문학주의, 세계문학상에 집착하는 제국주의적 욕망… 등 불만족스러웠던 성격 전반의 종족화된 기표로서 ‘개저씨’란 얘기를 썼던 거죠.”
그는 페미니즘을 ‘비문학적인 것’으로 간주하려는 비평적 시도(페미니즘 소설=정치적 올바름에 구속된 작품=정체성 정치의 한계 노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한국근현대사의 폭압을 특권적으로 경험한 남성 주체, 반면 시민이자 역사적 주체로서 자격이 박탈된 여성 비체라는 한국문학 재현 양상에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적 상식’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피, 땀, 젖, 체액’처럼 신체에서 나오는 것의 ‘냄새’로 자주 환원되는 ‘여성-비체’와 거리를 두는 것으로 “미학적 염결성을 고수”하는 남성(들)의 문학세계는 홀로 존엄한가 묻는다.
“퉁쳐질 수 있는 집단은 아무도 없지만 끝없이 여성적 문제의식은 게토화되었고 소수자 정치는 한국문학에서 과소재현 됐다 생각해요. 젊은 독자들은 무람없이 재현되는 웹툰과 비엘(보이스 러브, 남성간 성애물)을 보고 있는데, 한국문학 자체가 드넓은 서사장르에서 재현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에 대해 한번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자혜 작가의 <미지의 세계>는 현재 3, 4권만이 현실문화에서 발간되고 있다.
그는 ‘문학’을 신성시하는 입장과 거리가 멀다. “가부장적 문학질서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던 실천”으로서 최은영, 강화길, 전경린, 조선희, 명지현의 작품을 분석하고 논란이 되었던 이자혜 작가의 웹툰 <미지의 세계> 평론을 선보이는 책 후반부는 누군가에겐 충격이고 누구에겐 선물일 것이다. 불편해하거나 후련해하거나, 그의 말대로 시민사회의 “공통감각”으로 “좋은 취향”을 등재시키려는 것은 정치 투쟁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라벨링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들, 비평가들이 이젠 얼마든지 있지요. 하지만 여전히 ‘정치적 올바름’에 갇혀 있다는 백래시와 비평적 시도들이 있어서 담론투쟁을 해야 하는 형국이긴 합니다.”
이 책은 한동안 페미니즘 메타비평의 레퍼런스가 될 것 같지만, 끝이 아니다. 페미니즘 비평사를 보여줄 다른 열차들도 속속 플랫폼에 들어오고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의 저자 오혜진 작가가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