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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유사체험’ 뇌과학자 바바라 “정신병 수치스러워해선 안된다”

등록 2019-05-13 18:15수정 2019-05-13 20:33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 과학자입니다’ 저자 인터뷰

뇌종양으로 치매·조현병·조울증 증상 앓아
“정신질환 걸리면 병을 인식 못하게 돼
의사 진단·치료 받도록 설득 쉽잖아”
미레크 고르스키 제공
미레크 고르스키 제공
미국 국립정신보건원 인간두뇌수집원의 총책임자인 바버라 립스카(68)는 평생을 뇌 연구에 바쳤다. 시체안치소에서 들여온 인간의 뇌를 편으로 저며 조직 표본을 만들었고, 조현병이 발생하는 뇌의 핵심 위치를 밝히는 ‘립스카 모델’을 개발했다. 누구보다도 뇌에 정통한 그에게, 2015년 1월 뇌종양이 찾아왔다. 그동안 자신에게 수많은 생체실험을 당한 ‘쥐의 복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뇌가 망가지자 정신질환을 앓을 때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이 발현됐다. 치매 환자처럼 기억이 끊기고 집을 못 찾고 셈을 못하고, 조울증·조현병 환자처럼 자제력을 잃고 분노를 터뜨리고 망상에 시달렸다. 첨단 의학의 도움을 받아 무서운 속도로 번성하는 뇌종양을 두달 만에 가까스로 진압한 그는 과학자다운 냉철함으로 악몽 같았던 경험을 꼼꼼히 기록한 <더 뉴로사이언티스트 후 로스트 허 마인드>를 펴냈다. 이 책은 정신질환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라는 사실을 정확히 짚었고 정신질환의 깊은 고통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올봄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도서출판 심심)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병을 앓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인간두뇌수집원에서 일하며 열정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바버라 립스카를 최근 전자우편으로 만났다.

책 속의 립스카는 의연한 태도로 불행을 견딘다. 일상생활을 유지하려 애쓰고 운동을 중단하지 않는다. 그는 인터뷰에서 “뇌종양 선고를 받자 나는 곧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며 “그러나 생산적인 자세를 취하려고 했다.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남편과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할 여러가지 절차를 밟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나는 어차피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치료를 받는 것이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워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투병기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정신질환을 앓는 동안엔 자신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질병인식불능증’에 빠진다는 점이다. 뇌종양이 부풀어오르기를 멈추고 나서야 립스카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게 된다. “나는 (병을 인정하라고) 정신질환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동치료(문제가 되는 행동패턴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도록 학습시키는 것)를 통해 약을 먹고 의사를 찾아가게 할 순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과학자이자 의사인 우리 가족들 역시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성격이 괴팍해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병원에 데려갔다. 가족과 친구들이 해야 하는 일은 바로 병원에 가게 하는 일이다.”

바버라 립스카(왼쪽 둘째)가 후두엽 종양 제거 뇌수술을 한 지 한달 뒤 가족들과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하는 모습. 바버라 립스카 제공
바버라 립스카(왼쪽 둘째)가 후두엽 종양 제거 뇌수술을 한 지 한달 뒤 가족들과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하는 모습. 바버라 립스카 제공

남편 미레크 고르스키(오른쪽)과 함께한 모습. 바버라 립스카 제공
남편 미레크 고르스키(오른쪽)과 함께한 모습. 바버라 립스카 제공
그가 입원했던 조지타운병원엔 이런 문구가 씌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부서졌고 빛은 그 틈으로 들어온다.’(We are broken, that’s how the light gets in) 뇌가 무너졌을지라도 부서진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올 것이라고 믿었던 립스카는 면역치료·표적치료·사이버나이프 등을 받으며 ‘정상적인 인간’으로 복귀했다. 2016년 12월엔 가족들과 철인3종 경기에도 도전했다.

그는 바지에 오줌을 싸고 길을 헤매는 일 같은 매우 부끄러운 기억도 솔직하게 적었다. 그가 용기를 낸 이유는 이러했다.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매우 수치스러워한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나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면 언젠가 이런 오명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암도 수치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아무도 질병을 수치스러워해선 안 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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