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생각하지 못한 정도였지만, 그 때문에 부담감을 느꼈다기보다는 오히려 ‘소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소설을 안 읽는 시대라고는 해도, 소설을 통해 의견을 나누고 사람들의 관심사를 모으고 사회적 이슈와 소설이 함께 갈 수 있다는 경험이 다음 소설을 쓰는 데 믿음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82년생 김지영>으로 한국 사회 페미니즘 운동과 담론에 큰 영향을 끼친 작가 조남주가 신작 장편 <사하맨션>(민음사)을 내고 2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사하맨션>은 가상의 도시국가를 배경 삼아 사회 주류에서 버림받고 배척 당한 소수자들의 삶과 싸움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는 “러시아 연방 산하 사하공화국에서 이름을 따왔다”며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으로는 최저치인 영하 70℃를 기록한 적도 있고 더울 때는 영상 30℃를 넘기도 하는 곳인데, 세계 다이아몬드 매장량의 절반 정도를 보유한 것으로 짐작되는 이 공간이 소설 주제에 어울리는 상징성을 지녔다고 보았다”고 설명했다.
<사하맨션>은 기업이 인수함으로써 탄생한 도시국가 ‘타운’에 속하지만 주민권도 체류권도 없이 ‘불법’ 체류자 신세로 타운의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는 낡은 아파트 사하맨션의 거주민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본국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이곳으로 도망쳐 온 도경과 진경 남매를 중심으로 관리인 영감, 꽃님이 할머니, 거구의 젊은 여성 우미, 애꾸눈 웨이트리스 사라, 자신은 타운 소속임에도 각각 의사와 보육사로 사하맨션 사람들을 돌보는 수와 은진 등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자이크처럼 엮었다.
“<82년생 김지영>이 밑그림을 다 그려 놓고 색칠을 해 나갔다면 이번 소설은 계속 덧그리고 지우는 방식으로 써 나갔어요. 2012년 3월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그때그때 제가 느낀 문제의식, 한국 사회에 대한 생각과 고민 등을 담게 되었지요. 저는 아마도 읽히는 재미보다는 소설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할 것인가에 더 중점을 두고 쓰는 작가인 것 같아요.”
조남주는 “밀입국자와 노인, 여성, 아이,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하맨션의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며 “소설의 결말은 열어 놓은 셈인데, 겉으로는 패배한 것처럼 보일지언정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생각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페미니즘 작가’라 불리는 게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며 “중학교 여학생들의 성장 이야기를 다음 소설로 쓰고자 아이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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