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안산대 권용은 교수
“제 몸이 아프니 아버지가 병상에서 느꼈을 고통이 생각나더군요. 뒤늦게 철이 난 거죠.” 권용은 안산대 영유아학부 교수 말이다. 그는 지난 3월 선친 권순영(1920~77) 판사를 추모하는 책 <인간가족-영원한 청년 권순영 판사 이야기>(신촌책방)를 냈다.
부친이 세상을 뜰 때 그는 고3 18살이었다. “10년 전 책을 내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때 제가 유방암 1기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까지 했거든요. 그 무렵 13살 위 둘째 언니에게도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났어요. 총명하고 활동적인 언니였죠. 허무를 느꼈어요. 뭔가 남기고 싶었어요. 나까지 사라지면 내 아버지 이야기도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난 24일 경기 안산시 안산대 연구실에서 저자를 만났다.
그는 집필부터 출간까지 혼자 책을 만들었다. 이유는 “나의 삶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충분한 애도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란다. 출판사 등록도 했다. 그는 어린 시절 토요일이면 부친의 손을 잡고 신촌의 홍익문고를 찾곤 했다. 신촌은 부친과 함께한 추억 대부분이 서린 곳이다. 거기엔 부친이 4녀1남 자녀를 위해 빚까지 내어 지은 이층집이 있었다. “운 좋게 ‘신촌책방’ 상호를 쓰는 기존 출판사가 없어 등록이 가능했어요. 등록하자 부자가 된 것 같았죠. 신촌 거리가 온통 내 것 같더군요.”
42년 전 가족들은 수험생 막내를 배려해 그에게 아버지 병세를 숨겼다. “아픈 아버지 앞에서 ‘나 시험 망쳤어요. 이화여대 못 갈 것 같아요’라고 투정을 부렸어요. 돌아가신 뒤에도 그랬어요. 아버지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일찍 돌아가실 수 있나, 화가 났죠. 아픈 뒤에야 아버지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죠.”
출간을 위해 공부도 많이 했단다. 4년 전 홍대 상상마당에서 포토에세이 강의를 두 달 들었고 지난해는 중앙대 문예창작 과정에 등록해 1년 동안 글쓰기를 배웠다. 올 초 8주 동안 서울 선릉역 근처 최인아책방에서 책 만들기 강좌도 수강했다.
책을 보니 쉽사리 눈길을 떼기 어렵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부친이 1950년대 초 거금을 주고 산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로 찍은 가족사진이 시선을 오래 붙든다. “사진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설명은 뒤에 넣었어요. 포토에세이 강의를 들을 때 접한 사진집 <윤미네 집>을 참고했지요.” 고 전몽각 교수가 딸 윤미의 출생부터 결혼까지의 모습을 담아낸 <윤미네 집>(1990)은 사진집으로는 이례적으로 복간본이 나올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판사로 15년, 변호사로 13년 일한 부친의 생애를 간추린 글도 간결하고 매끄러워 잘 읽힌다.
그는 책꽂이 장식이 아니라 손에 들고 다니며 읽는 책이 되기를 바랐단다. “소설과 전기 사이에서 고민하다 소설도 아니고 전기도 아닌” 글쓰기를 한 이유다. “왜 이렇게 썼나, 참견할까 봐 원고를 형제들 누구에게도 미리 보여주지 않았죠. 취재차 언니들에게 부모님의 결혼 전 다른 연애 추억을 물었더니 한 언니가 ‘그건 왜 쓰려고 하니, 좋은 것만 쓰라’고 하더라고요.”
부친 권 판사는 소년범죄 예방에 관심이 많았다. 50년대 후반 자원해 서울지방법원 소년부 책임을 맡았다. 1958년 서울아동상담소를 설립해 초대 소장으로 일했다. 소년범죄에 처벌보단 교정과 보상 같은 인도적 접근법을 취했다. 서울가정법원장 권한대행을 맡아 1963년 서울가정법원 설립을 이끌었다. 같은 해 고 윤형중 신부와 사형제 존폐 지상 논쟁을 하기도 했다. 부친은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다.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 무죄판결 유명
1977년 부친 57살 별세 때 ‘고3 막내’
“병환 모른 채 투정하고 원망한 철부지” 10년 전 항암 투병 때부터 ‘기록’ 준비
1인 출판사 차려 ‘인간가족’ 직접 출간
부친 찍은 5남매 사진 ‘포토에세이’로
대중은 이런 활동보다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1955)의 1심 재판관으로 부친을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권 판사는 댄스클럽 등에서 수십명의 여성을 유혹해 혼인빙자 간음 혐의로 재판정에 선 박인수에게 무죄 선고를 했다. 공무원 사칭만 벌금형을 내렸다. 판결 뒤 부친은 이렇게 말했다. ‘법은 사회적 이익이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집 골목에는 기자들이 서성거렸다. 부친은 이듬해 자신을 아끼던 김병로 대법원장의 배려로 미국 연수를 떠났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혼인빙자간음죄를 “성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한다”며 위헌 결정을 했다. “부친은 법 조항에 근거해,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하신 거죠. 대중한테 비난받을 줄 알면서도요.” 부친의 ‘정조 발언’을 두고 권 교수는 “2019년 기준으로 그때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항변했다.
5남매와 그 배우자 중엔 법조인이 한 명도 없다. “아버지는 법률가 자식이나 사위를 원하지 않으셨어요.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잡힌 포로 중 법률가가 가장 먼저 처형되었다고 하셨어요. 기술자는 쓸모가 있다고 살려줬지만 법률가는 아무짝에도 필요가 없다고요.” 자신의 책이 ‘법률가 권순영’을 기억하는 매개가 되었으면 한다고도 했다. “법률가 후손이 없다 보니 부친이 법조계에서 사라진 인물이 된 것 같아 아쉬워요.”
그의 책은 책 만들기 수업을 들은 최인아책방에서만 팔고 있다. 같이 강의를 들은 수강생 10명 중 6명이 책을 냈단다. “인쇄비 180만 원으로 400부를 찍어 절반쯤 팔았어요. 대부분 지인 판매이고 책방 판매량은 많지 않아요. 그래도 최인아책방 월간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들었어요.” 신촌책방의 다음 책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용자 언니의 사진집이 될 것 같단다. “조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책을 계속 낼 겁니다. 출판은 즐거운 놀이 같아요. 관계도 넓어지고요.”
‘여러분의 이야기도 나에게 해주기 바란다.’ 그가 책에서 독자들에게 한 부탁이다. “의사인 초등 동창생에게 책 추천서를 부탁하며 그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친구가 그러더군요. 추천서를 쓰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부친을 사랑하는 존재로 느꼈다고 하더군요. 그전까지는 넘어야 할 존재로만 여겼다고요. 책 나오기 전날 이대 부속 초등학교 동창 15명을 만났어요. 내 책 출간을 계기로 함께 가족 이야기를 나눴죠. 서로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권용은 교수 뒤로 보이는 사진은 둘째 언니(용자)가 아버지 카메라로 막내(용은)를 찍은 모습이다. “용자 언니는 이 사진으로 2007년 사진공모전에 입선하기도 했죠.” 강성만 선임기자
권용은 교수가 펴낸 책 <인간가족> 표지.
부친은 결혼식 주례도 많이 했단다. 부친이 주례를 선 한 결혼식에서 막내 용은씨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다. “아버지가 주례를 할 때 저를 늘 데리고 다니셨죠.” 권용은 교수 제공
권용은 교수 네 자매. 모두 이화여대 동문이다. 오빠도 연세대 의대를 나왔으니 오남매 모두 신촌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 권용은 교수 제공
덕수궁 구경을 갔을 때 찍은 사진. 권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란다. 권용은 교수 제공
둘째 언니가 부친 카메라로 찍은 막내 용은의 모습. 2007년 미국 히스토리채널 사진공모전에서 입선했단다. 권용은 교수 제공
막내 용은이 아버지 변호사 사무실 직원과 트위스트를 추고 있다. 권용은 교수 제공
1977년 부친 57살 별세 때 ‘고3 막내’
“병환 모른 채 투정하고 원망한 철부지” 10년 전 항암 투병 때부터 ‘기록’ 준비
1인 출판사 차려 ‘인간가족’ 직접 출간
부친 찍은 5남매 사진 ‘포토에세이’로
안산대 교정에서 포즈를 위한 권 교수. 남편과 아들의 직업이 같단다. 비행기 조종사다. “남편은 공군 중령으로 예편해 대한항공을 거쳐 지금 제주에어 기장으로 있어요. 아들은 대한항공 부기장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부친이 1950년대 초 당시 집 한 채 가격인 거금을 들여 샀다는 롤라이플렉스 카메라. 권용은 교수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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