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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무엇이 페미니즘과 문학을 갈라놓나

등록 2019-05-31 06:00수정 2019-05-31 20:06

13인 여성 비평가들의 비평 앤솔로지
시민-독자 견인한 ‘페미니즘 이후 문학’
“우리의 질문은 다시 질문을 낳을 것”
문학은 위험하다-민음의 비평10
소영현 외 12명 지음/민음사·2만2000원

<문학은 위험하다>를 쓴 여성 비평가들. 왼쪽부터 소영현, 서영인, 허윤, 정은경, 양윤의, 김미정, 차미령.
<문학은 위험하다>를 쓴 여성 비평가들. 왼쪽부터 소영현, 서영인, 허윤, 정은경, 양윤의, 김미정, 차미령.
오랫동안 독자들은 문학 작품들 속에서 여성을 착취함으로써 완성되는 인간 실존을 줄줄이 만나왔다. 그 문학적 재현은 상상에 그치지 않았고, 종종 현실과 넘나들었다. 그래서 질문이 나온다. 왜 ‘그 인간’ ‘그 실존’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을까? 여성을 도구로 삼는 문학 작품은 어째서 여성혐오가 아니라 미학이라고 읽히는 걸까? ‘그 문학’ ‘그 미학’ ‘그 비평’의 성별은 무엇일까? 90년대 여성문학의 열기는 어디로 갔을까?

2015년 전후 한국 사회에서 긴박하게 터져나온 페미니즘 이슈는 근대 이후 한국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2016년 가을부터 시작한 ‘#문단_내_성폭력’ 운동은 문학장 전체에 페미니즘적 성찰성을 요청했다. 지난해 말 밀리언셀러가 된 <82년생 김지영>은 문학장의 가장 큰 충격이었다. 텍스트를 맹렬하게 찾아 읽으면서 탄생한 새로운 ‘여성 시민 독자’ 주체는 열렬한 자기주도적 학습자였고, 김승옥과 김훈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여성혐오의 면모들을 재독했다.

평론집 <문학은 위험하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과 독자 시대의 한국문학>은 국내 첫 ‘페미니즘 비평 앤솔로지’다. 2000년대 이후 비평 활동을 시작한 13인의 여성 비평가들이 한국문학의 치열한 현장을 밝힌다. 1부에서는 1960~70년대 이후 2010년대까지 한국문학 비평이 남긴 주요 담론들을 다시 읽고 여성 비평가들의 의견을 새롭게 제출한다. 소영현, 양윤의, 서영인은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실천문학> <문학동네> 등 계간지에서 고평을 받으며 한국문단의 지배적인 ‘문학적인 것’으로 승인된 작품들과 여성의 자리를 소거해온 비평들을 학술적으로 반박하는 한편, 한정적이었던 여성 문학과 문학인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을 밝힌다.

2부는 ‘지금 여기’ 한국문학과 페미니즘적 요청을 보여주는 비평을 모았다. 2015년 이후 가시화된 ‘페미니즘 출판 전쟁’에서 주요한 매개체가 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강화길의 <다른 사람>,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과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 이르기까지 ‘촛불’ 이후 ‘지금 여기’에 도착한 인상적인 작품들을 다룬다.

서영인은 1980년대 초중반 문학사 최초의 ‘페미니스트 앤솔로지’가 나타난다고 보는데, <여성> <여성해방의 문학> <여성운동과 문학> 등이었다. 또 그들의 잊힌 발화를 정치적으로 복권하는 한편 ‘제3세계 여성’이라고 정체화하면서 “민족과 민중의 위기를 넘지 않는 논의”까지만 나아갔던 당시 여성운동의 한계를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의 여성 비평가모임은 다르다. 이들은 3년 전부터 지금까지 30여 차례의 모임을 통해 백래시에 주눅들지 않는 기개, 담론화를 밀어붙일 공부력을 갖추고 비평적 논의를 거듭해왔다. 소영현 평론가는 “이전까지 진영도 입장도 다른 여성 비평가들이 2015년 신경숙 표절 사태를 계기로 모이게 되었고, 함께 공부하며 책까지 내게 된 건 문학사에서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특히 <82년생 김지영>과 <다른 사람> 등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 미학적으로 결여돼있다”고 한 이른바 ‘미학 논란’을 집중 분석한 부분이 눈에 띈다. 정은경, 백지은, 김미정, 허윤, 조연정은 107만부 국내 판매, 18개국 수출을 기록하며 글로벌한 공감을 낳은 <…김지영>을 단순히 미학적 우열의 문제로 감별하려는 비평의 백래시적 혐의를 지적한다. ‘김지영 현상’이 사실은 “한국 문단의 상황에 대한 일종의 권력투쟁”이며 “이 정치의 행위자가 독자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허윤)는 것이다. 서영인은 “문학사에서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의 발견과, 뒤늦은 발견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그들에 대한 경의와 존중이 이즈음의 문학비평가들이 솔직히 꺼내 놓는 자기반성의 주요 내용”이라고 말한다.

왼쪽부터 백지은, 장은정, 강지희, 인아영, 조연정, 양경언.
왼쪽부터 백지은, 장은정, 강지희, 인아영, 조연정, 양경언.
여성 비평가들은 책에서 일관되게 ‘시민-독자’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는 “문학의 하위범주로서 시민, 민족, 민중, 대중으로 호명된 문학적 대표 주체”(소영현)의 재현과도 관계가 있다. 주체는 타자를 만듦으로써 성립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재현(representation)은 그야말로 쟁투 끝에 획득할 수 있는 자격이니 ‘문학적인 것’의 정치성을 말해 더 무엇하랴. “문학장을 향해 직접 자신을 발화하고 욕망을 주장”(김미정)하는 새로운 여성 독자 주체에 대한 분석은 또 다시 여성 비평가들의 몫이 되었다. 소영현은 남성 문인이 ‘문단 내 성폭력 사태’에 입장을 표명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라며 오늘날 젠더 이슈를 ‘여성들만의 것’ ‘페미니즘만의 책임’으로 만드는 ”위탁화 경향”은 해소해야 할 과제라고 보았다. “왜 ‘모두’를 위한 혁명이 일어나는 광장의 자리에서 ‘여성’들만은 거듭 교묘하게 배제되는가”(강지희)라는 질문에도 소영현은 페미니즘의 게토화를 두려워하기보다 돌파할 것을 역으로 제안한다. “누가 인간인가를 거듭 물었던, 작은 성공과 큰 실패의 역사가 바로 페미니즘이다. 여성문학의 게토화와 페미니즘의 위탁화 경향이 자조적으로 통탄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최근 이어진 페미니즘 계열의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읽어온 독자라면 여성혐오와 성폭력을 주제로 한 강화길, 박민정의 작품, 일과 여성을 문제 삼은 김숨과 김이설 등의 작품 분석을 읽으면서 더욱 풍부한 문화적 차원의 이해를 얻을 것이다. 문단의 성폭력 사태를 비롯해 문학·문단 속 남성중심성과 가부장의 자기연민에 고개를 갸웃거렸을 독자라면 장탄식과 자학에서 벗어나 비평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여성 비평가들의 목소리에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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