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사람과 눈사람임솔아 지음/문학동네·1만2500원
임솔아(
사진)의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은 2010년대 후반 한국 문단과 사회 전체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페미니즘의 열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책에 실린 여덟 단편 중 ‘추앙’은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기록집 <참고문헌 없음>(2017)에 실렸고, 표제작이자 가장 최근작인 ‘눈과 사람과 눈사람’은 성폭력 피해자 연대 활동 내의 갈등과 균열을 다룬다.
‘추앙’을 두고 작가는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로서 제가 용기 내어 적은 첫 글”이라고 밝혔다. 소설 주인공 정원은 “말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존경하는 시인이 교수로 있는 학교로 진학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그가 겪은 일들은 어떤 것이었나. 입시생 시절 자신을 매료시켰던 교수는 “너는 마녀상이야. 남자 잡아먹을 상”이라는 막말을 내뱉고, 역시 시인인 강사는 술자리에서 정원에게 입을 맞추려 하고 언어 성폭력을 저지른다. 정원이 보낸 항의 메일에 강사는 자신의 시처럼 “멋진 문장으로 빼곡”한 사과문을 보내 온다. 이런 교수와 강사,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선배를 보며 정원은 ‘시적 허용’이라는 말로 미화되는 문단의 악습을 고발하는 글을 쓰기로 한다.
“사회의 윤리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문학을 추앙하는 태도와 그런 태도를 가진 자들을 추앙하는 태도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 연결에 얼마나 내밀한 권력관계가 작동하는지를 적어보고 싶었다.”
올 봄 계간지에 발표된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서는 사정이 좀 더 복잡해진다. 화자 ‘나’를 비롯한 일단의 여성들은 성폭력 피해 여성과 연대하는 활동을 펴 왔는데, 어느 때부턴가 피해자로부터 또 다른 가해자로 지목 받는다. “고통받아본 적도 없으면서 남의 고통마저 약탈해서 정의로운 척하는”, 무임승차자이자 고통의 착취자로 몰린 것. ‘나’와 동료들은 그런 오해와 비판에 대해 해명하고자 함께 글을 작성하지만, 그 글이 피해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가해자들을 이롭게 할 것을 걱정해 핵심 내용을 들어내기로 한다. “선의만 남겨놓느라 공허해진 글”을 앞에 두고 그들은 고민하는데, 피해자를 우선한다는 원칙만은 끝까지 지키고자 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임솔아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