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 지음/민음사·1만9800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의 한 신혼부부가 워싱턴주의 시골 마을에 터를 잡았다. 허름한 양계장을 구입해 무작정 닭을 치기 시작했지만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속을 썩이는 돼지, 비가 새는 지붕, 하찮은 병아리 시중…. 부부는 4년 뒤 결국 이혼했고, 아내는 틈만 나면 가족들에게 왕년에 고생한 얘기를 털어놨다. “그 얘기 너무 재밌는데?” 가족들의 성화에 떠밀려 출간한 책이 2년 만에 130만부가 팔려 대성공을 거뒀다. 베티 맥도널드의 회고록 <달걀하고 나하고> 이야기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도 자서전을 쓸 자격이 있을까?” <안정효의 자서전을 씁시다>의 저자는 베티 맥도널드의 사례를 들며 자서전이란 그렇게 두려운 개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소설 <하얀 전쟁>의 작가이자 100여편이 넘는 다양한 영미 문학을 번역해온 저자가 자신의 ‘자서전 쓰기’ 방법론과 철학을 한 책에 담았다. 주제를 글쓰기 일반이 아닌 굳이 ‘자서전’으로 한정한 이유는 “소설가나 시인은 아무나 될 수 없지만, 자서전 작가는 누구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는 인생을 글로 기록하는 과정에 필요한 마음가짐부터, 구상-착수-마무리까지의 광범위한 글쓰기 기술과 지식이 등장한다. 다만 저자는 글쓰기의 결과물만큼 과정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글쓰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의식 아래 감춰 둔 열등감과 죄의식을 치유하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자서전의 참된 가치는 책의 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글쓰기로 되돌아보는 과정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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