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나라의 경제구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76년쯤입니다. 월남전(베트남전쟁) 특수로 기업들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며 분배의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게 그때였기 때문이지요. 당시 국무총리는 국민을 향해 ‘지금은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 축적의 시기’라 말했고, 국민들은 분배의 시기가 오기를 침묵 속에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뒤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고 1인당 국민총소득이 3만불 시대가 되었음에도 ‘이제는 분배의 시기’라는 공식 발언은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소득격차가 지나치게 커진, 역피라미드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면서, 지금 스무살인 제 손자 세대만큼은 저희가 겪은 모순과 갈등과 문제점을 겪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작가의 의지 때문에 이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소설가 조정래(76·사진)가 신작 장편 <천년의 질문>(전3권, 해냄출판사)을 내고 11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작가의 말’에 쓴 대로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 현실을 바탕 삼아 응답한 소설”이라고 작가는 소개했다.
<천년의 질문>은 시사 주간지 열혈 기자인 장우진을 중심 인물 삼아 한국 사회의 환부를 파헤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한 작품이다. 국회의원, 재벌가 사위, 기업 비자금 담당 임원, 변호사, 대학 시간강사 등이 비중 있게 등장해 부패와 비리, 연고주의 같은 어두운 현실을 생생하게 까발린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읽은 수필에 신문과 기자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고 기자는 사회의 등불이요 산소여야 한다는 것이죠. 기자는 직분상 사회의 모든 분야를 구체적으로, 폭넓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장우진은 바로 그처럼 작가가 소망하는 바를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으로 설정했습니다.”
장우진은 ‘일제강점기 김원봉 열사가 독립운동 하듯이’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사명감 넘치는 기자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탐사와 고발 기사를 쓰며 어떤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는 그는 이상적 기자상의 모범처럼 그려진다. 소설에는 그런 장우진과 대비되는 ‘기레기’들의 행태 역시 등장한다. 기업 비자금 담당 임원에게 ‘충성 문자’를 보내고 기사와 광고를 거래하는 언론사 편집국장과 논설위원, 부장 등이 그들이다. 이와 함께 재벌 딸의 욕설과 폭행, 퇴직 공무원의 유관 기관 재취업, 전관 예우 등 현실 속 사건들이 거의 실물대로 소설에 등장한다.
“소설이 문제를 제기할 뿐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정의는 존중합니다만, 저는 이 소설에서 제 나름의 해결책도 제시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그나마 인권을 존중하고 복지를 실시하는 모범적인 국가입니다. 그 나라들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활발한 시민단체의 존재입니다. 시민 1000만명이 10개 내지 20개 시민단체에 1000원씩 후원하는 ‘평화적 상비군’의 존재가 소설가 조정래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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