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의 탄생-우록리 할매들의 분투하는 생애 구술사최현숙 지음/글항아리·1만9800원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어느 여성 생계부양자 이야기김은화 지음/딸세포·1만4800원
자신의 엄마가 살아온 생애를 인터뷰해 책으로 펴낸 김은화(왼쪽) 작가와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할매’들의 생애를 기록한 최현숙 작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번엔 ‘할매’다. 2017년 초 구술사 강좌에서 사제간으로 만난 두 사람이 거의 같은 시기에 장년·노년층 여성들의 생애사 책을 냈다. <할매의 탄생>은 <할배의 탄생>(2016) 등의 구술생애사로 유명한 작가 최현숙이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의 할머니들을 만나 쓴 책이다. “경상도” “작은 산골” “여성”이란 이유로 고된 노동과 갖가지 갈등에 시달려야 했던 이들은 “그래 일을 마이 하고 살았는데” 이제 늙어 “자꾸 꼬구라진다”면서도 “내내 썰고 닦”고 “키아가 나눠먹는” 이웃으로 산다. 책은 잊힐까 우려될 만큼 풍부한 사투리의 향연, 다채롭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생애를 살아온 ‘할매’들의 분투기다. 동시에, 작은 마을에 떠도는 수많은 “말, 말, 말”을 통해 차마 공식화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기억과 해석을 보여준다. 농촌 여성의 노동 활력과 섹슈얼리티, 치열한 머리 싸움과 인간 관계의 기획이 의외성으로 가득해 읽는 내내 흥미롭다.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는 출판편집자로 일하다 직접 출판사를 차린 김은화 딸세포 대표(서울잡스 내일 취재단 편집장)가 엄마 박영선(가명)씨를 인터뷰하고 직접 편집해서 2년 만에 완성한, 섬세하고 만듦새 좋은 구술생애사다. 크라우드 펀딩에 독자 444명이 참여했는데, “울기도 하면서 치유가 되었다” “우리 엄마랑 읽고 싶다” “우리 가족사 르포인가 싶었다”는 호평이 줄을 이었다.
30대인 저자는 구술을 하며 비로소 엄마가 자신이 알던 사람과는 영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1956년 경남 의령군에서 4남3녀 중 넷째로 태어난 영선씨는 예쁘고 공부도 잘했다. 마산통신고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오빠들이 한꺼번에 군대에 간 바람에 집안을 벌어먹여 살리느라 대학 진학을 못한 게 평생 한으로 남았다.
영선씨는 10대 중반부터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주경야독하고 만화방, 한복집, 출판유통사, 매점, 요양원 등에서 11가지 직업으로 일하며 평생 가족을 부양했고 가난과 이혼이란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조정한, 강인한 노동자로서 스스로 자부심도 컸다. 엄마의 생애를 한국 근현대사 맥락에서 정확하게 복원하려 한 딸의 세심한 노력에 힘입어 잊힐 뻔한 여성생계부양자의 노동이 기록된 건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다. 물론 읽는 재미도 빠지지 않는다.
최현숙, 김은화 두 저자는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기자가 끼어들 틈도 없이 서로 안부와 책에 대한 느낌을 주고 받았고 대화중에 가끔 눈시울을 붉히거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최현숙 2017년에 <한겨레> 칼럼을 보고 우록리 한글반 선생님이 구술 작업을 해달라고 연락처를 남겼는데, 거기가 완전 깡촌이야. 나는 굉장히 바쁠 때였고 이 작업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랑 조금 달라 망설였어. 한글반 선생님은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언닌데, 군산 출신으로 특수 교육 메카인 대구에서 장애여성청소년 그룹홈 하면서 살러 들어갔었대요. 슬쩍 물어보니 <한겨레> 창간 주주로 이삼일 만에 우편으로 신문을 받아보고 <녹색평론>도 10년 독자더라구. 거기 와서 작업해주면 방도 내주겠다고 하고, 와이파이도 된다고 하는 거야. ‘이 정도면 자빠져도 되나? 적극 꼬실 때 자빠져줘야지’ 해서 구술을 하게 된 거야. 하하.
김은화 저는 최 선생님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구술생애사를 쓰고 싶어 그해 초에 강의를 들었어요. 처음 제가 엄마를 인터뷰할 때는 계몽의 시각으로 접근했잖아요. 엄마가 가난하고 힘들었던 자신의 생애를 긍정하지 않으니까 제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생각을 바꿔주겠다면서 작업을 시작했던 거죠. 대화를 통해 엄마가 바뀌리라 기대했는데, 제가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거리를 좀 두고 공감하면서 얘기를 들어줬을 텐데, 그때 엄마는 나한테 왜 그랬어, 하는 식으로 말이 나가더라구요.
최현숙 누가 그러더라, 가족은 자연재해래! 부모 자식간에는 아킬레스건이 있어. 혈연을 인터뷰 하다 보면 해묵은 감정이나 역감정도 나오지. “나는 그때 힘들었는데, 엄마는 나를 왜 안 보살펴줬어?” 같은 거. 우리 엄마도 내가 생애사 인터뷰를 할 때 예민하게 나온 적이 있었어. 내가 “그때 아버지는 그런 마음이나 상황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해하는 식으로 말하면 완전 뒤집어졌거든.
김은화 맞아요. 저는 2017년에 구술을 마치고 다음 해에 엄마랑 인터뷰를 추가로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비로소 알았어요. 엄마한테는 구술이 힘들고 어려웠다는 것을.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괴로우셨던 거죠.
최현숙 우리 엄마는 작년 11월에 돌아가셨는데 그 전까지 3년 과정을 내가 기록했잖아. 내가 지금까지 작업해온 도시 빈곤 노인하고는 다르게 엄마는 부자 노인이었지만 평생 큰 아들, 돈, 남편한테 집착했고 그것 때문에 뒤집어졌다가 엎어졌다가 했어. 구십이 넘은 노인네가 나중에는 치매로 상태가 나빠져서 “자식과 남편이 나를 가뒀다”고 말하는데 그걸 보면서 “엄마 왜 저래?” 하기보다는 ‘저 여성, 저 한 사람의 인간이 평생 추구한 바가 모두 자기 안에서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이 되더라고. 엄마의 전 생애와 연관돼서 그 행동이나 말을 이해했어.
엄마가 편찮으실 때 가만보니 아버지가 옆에서 끊임없이, 끈질기게 잘 해. 저 양반이 회개를 했나, 했는데 원래 돌봄적인 그런 게 있었던 거야. 나 어렸을 때 아버지가 머리 땋아주고 책 표지 씌워주고 텃밭 가꾸고…. 남편은 돈 벌어와야 한다는 관념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그게 가부장제 성역할 규정이었던 것이지. 나도 폭력적인 아버지를 너무 미워하느라 엄마와 나를 피해자로만 봤어. 엄마는 가부장제 희생자이기만 하나? 그렇지 않은 거고. 아빠는 폭력적이기만 하나? 그게 아니었어. 아버지도 폭력 가해자로 딱 규정해 꽂아 두었는데 사실은 그도 아버지한테 당한 폭력 피해자였고 그 시대를 살아온 한 남성으로 보게 되는 거야. 또 하나, 엄마 인터뷰를 해보니 엄마가 어린 나한테 무지막지하게 한 것도 있더라고.
김은화 저도 피해자 시점으로 보고 엄마를 보고 구원해줘야겠다고 접근해서 얘기를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 사람은 나름 전략이 있고 계산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엄마는 강한 사람이었던 거예요. 선생님이 그때 그러셨잖아요. 아빠에 대한 너의 감정 들여다 봐라. 그래서 들여다보니 제 마음 속 장애물은 원망, 증오더라구요. 지금도 용서가 안 되지만 질문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때 왜 그랬는지…. 책 편집을 하면서 구술을 여러번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이제 조금 이해가 되는 게 있어요. 가족 생계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지만 기대치에 못 따라가는 자신을 보면서 자괴감이 컸겠다….
최현숙 그래, 혈연 작업을 하게 되면 자기 상처가 보이고 자기 성숙이 이뤄져. 부모 자식간에 구술 작업을 잘 하면 자기 인생이 펴. 화해까지는 필요 없지만 적어도 내 시선을 바꿀 수 있다는 거지. 엄마와 구술 작업하면서 내가 그 전까지 얼마나 밴댕이 소갈딱지였는지, 내 상처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한지도 보게 되었어. 구술하면서 서로간에 쌓인 갈등이 어떤 경로로 풀려나가는 것을 볼 때면 인간의 통제를 넘는 어떤 힘들이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신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김은화 사실은 엄마가 작년 말에 갑자기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라는 책 제목도 마음에 안 든다고 하고 “내가 니를 진짜 먹여 살렸나 싶다”고 해서 제가 와, 이 아줌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부아가 치밀어서 그만두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그러시더라구요. “이거 하나만 알아줘라. 나는 니랑 니 오빠를 살리기 위해 죽을 각오로 이혼했다.” 그걸 알아줬으면 해서 힘들어도 구술을 하신 거였어요. 저도 울면서 “그때 엄마가 나를 살렸다, 고맙다”고 했어요.
“애를 안 낳고 이 책을 낳았으니 잘 한 거지!” 최현숙 작가의 말에 두 사람이 웃고 있다. 작가들은 함께 서울 망원시장 여성 상인들의 구술사를 담은 책 <이번 생은 망원시장>을 쓴 적도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최현숙 나도 그 부분이 뭉클했어. 엄마가 죽을 각오로 결단하고 생계부양자로서 자식들 안 굶길려고 일을 엄청 한 거잖아. 가난할수록 여자들이 돈을 버는데 공공 복지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적용하니, 이게 현실이랑 맞지 않는 거야. 아이엠에프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남자들 대신 여성노동자들이 돌봄 노동시장에 싼값으로 무지하게 쏟아졌는데 그 여자들이 실제로 생계부양자였어. 내가 요양보호사를 하면서 현장에 들어간 것도 그때야. 요즘 논란이 된 사건 있잖아. 가구별로 농민수당을 주겠다는 전라남도 정책에 여성농민들이 반발하는 것도 그래. (농가가 남편 이름으로 돼 있으니)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선 여성과 자녀들이 손해 보게 돼 있어.
김은화 여자들은 끊임없이 일을 해왔잖아요. 크라우드 펀딩에서 책을 미리 읽은 독자들도 그래요. 자기 어렸을 때랑 너무 비슷하다고. 어렸을 때 친구 집에 놀러 가더라도 엄마들이 없었다고요. 모두 밖에 나가 일하고 있었던 거죠.
최현숙 맞아. 자식들이 많으면 집 근처에서 떡볶이를 만들어 팔거나 부업이라도 하고 있었지. 여기 우록리 할매들을 봐도 끊임없이 일하거든요. 뭐 땅에 “숨구고, 숨구고, 숨구고…” 하면서. 다 자기 ‘나와바리’고 자기 터전이니까 일도 무진장 하고.
김은화 이 책은 그러니까 엄마인 영선씨만을 위해 쓴 건 아니었어요. 당시에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함께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 부녀회 친구들, 한복 학원 동기들, 물류창고 동료들, 요양보호사들 같은 중년의 여성들이 있잖아요? 그들 하나하나 모두 생계부양자로 호명해주고 싶었어요. 가부장적 사회는 그들에게 떠오를 기회를 주지 않았지만 딸들한테 또 다른 기회를 준 당신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최현숙 나는 이번 책을 쓰면서는 도시 빈곤 노인과 농촌 노인을 견주게 되더라고. 깡촌 노인은 그래도 땅이 있으니까 논, 밭, 집터는 남아. 자식들한테 물려줄 게 있는 거고. 도시 노인은 문 밖에만 나가면 삐까번쩍하고 에이티엠(ATM)기니 뭐니 기계로 해야 할 일도 많으니 엄청난 소외감을 느끼는 거죠. 또 다른 점은, 우록리는 개발되지 않는 산골짜기여서 자연이 회복될 수 있었다는 거야. 공장이 들어와서 망가지는 다른 농촌과는 다르더라고. 농촌이 망하고 폐가가 속출한다는 것도 다 인간중심적 시각이야. 생명을 살리기 위한 쉼일 수 있거든. 하지만 이제 산촌도 공기가 안 좋아져서 공기청정기 들여야 한다더라고.
김은화 제가 임신하겠다고 했더니 ‘공기도 안 좋은 세상에 애는 왜 낳느냐’고 그러셨잖아요. 그러는 선생님은 본인 손주가 태어나니까 또 얼마나 예뻐하시면서!
최현숙 낳아 놓은 놈은 어떡해, 이뻐해야지. 김은화씨가 1987년생이니까 내 둘째보다 더 어린 거야. 은화씨 엄마가 1956년생, 내가 57년생이잖아. 이런 딸 같은 사람이 와서 나한테서 생애 구술사 공부하고 내 또래 엄마 이야기를 책으로 쓰니까 여자들 생애가 이렇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더란 말이지. 당신이 애 안 낳고 이 책 낳기를 천만 잘 한 거야! 하하.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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