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유종호 지음/민음사·1만5000원
그 이름 안티고네유종호 지음/현대문학·1만5800원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가 비평 에세이 두 권을 한꺼번에 내놓았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시, 깊고 넓게 겹쳐 읽기’라는 부제에서 보듯 한국 시와 일본 시, 영시 등을 다룬 시 비평에 가깝고, <그 이름 안티고네>에는 지은이의 회고담과 일상사 및 사회 현상에 관한 견해를 밝힌 에세이가 주로 실렸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유 교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 읽기의 즐거움을 독자와 나누고자 한다. “근대화에 따른 부락 공동체 해체 이전의 문화와 삶의 세목이 구체적,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독보적이면서 전무후무한 시적 증언이기도” 한 미당 서정주의 산문시집 <질마재 신화>, “쉽고도 의미로 꽉 찬 응축의 대목이 있”는 일본 시인 이바라키 노리코의 시집, “운명이란 이름의 자작극에 부친 자기암시의 대사”로 읽히는 백석의 시 등을 그는 자상하게 설명해 준다.
비평 에세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그 이름 안티고네>를 한꺼번에 낸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 교수. 11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젊었을 적에는 고전적 문학작품을 좋아하면서도 사회 변혁에 관심을 지녔다는 점에서 자기분열 비슷한 걸 가지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정치가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작자의 삶이 불결하다고 작품을 읽지 않는 것은 독자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지만 손해나는 일이라 생각한다.”
머리말의 이 대목은 미당의 친일 논란을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유 교수는 지난 2005년에도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을 역비판한 글 ‘안개 속의 길’을 문학잡지에 실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11일 오후 서울 목동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는 친일파 문제에 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에게도 선택의 자유가 있었던 듯 착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해방 이전은 지금의 이북과 똑같습니다. 비판의 자유가 없었어요. 당시를 살아 보지도 않은 이들이 친일파 운운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물론 필요 이상으로 과잉 충성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한 거예요. 그런 점에서 친일파를 일률적으로 매도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홍난파와 김동인 등의 사례를 들며 “과오가 중요한가 문화적 업적이 중요한가. 문화 유산이 풍요하지 못한 우리 실정에서 문화적 업적을 이룬 이들에 대해 응분의 경의를 표하는 게 마땅하다”며 “예술가의 행위와 예술작품 사이에는 구분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 이름 안티고네>에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한 미국쪽 반응을 다룬 글이 실려 있긴 하지만, 두 책에서 유 교수가 주로 거론하는 것은 고전적인 시 작품들이다. 한국 시로 국한하더라도 김춘수와 신동엽 정도가 하한선에 해당한다. 그는 최근 시들은 거의 읽지 않는다고 했다.
“전에는 심사 등 필요에 의해 열심히 보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지면서는 일부러 찾아 읽게 되지는 않더군요. 증정 시집을 받고 잠시 들춰 보아도 감흥이 안 생깁디다. 제가 워낙 보수적이어서인지, 젊을 때 보던 걸 다시 보게 됩니다. 음악도 그렇고 문학도 그렇고 역시 고전이 좋아요. 거듭 접해도 질리지 않고.”
유 교수는 현대시를 즐기지 않는 까닭으로 “산문투에 서술체”라는 점을 들었다. “고리타분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시와 산문은 구분돼야 한다. 시가 산문을 추종하고 산문화하는 데 대해서는 늘 회의감을 지녀 왔다”고 했다.
유 교수도 시를 쓰고 시집을 낸 적이 있다. 2004년에 출간한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가 그것. 그는 지금도 자신이 회원으로 있는 대한민국예술원 회보에 꾸준히 시를 발표하고 있다. “생활 감정, 계절 변화에 대한 반응, 친구의 죽음 같은 사사로운 관계 등을 다룬 시들”이라며 “50편쯤 되면 다시 시집을 내보려 한다”고 그는 말했다.
비평 에세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그 이름 안티고네>를 한꺼번에 낸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 교수가 11일 서울 목동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시집 말고도 그는 세 권짜리 소설도 쓰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이 민주화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살면서 이런 것이 괴로웠다, 하는 생각을 소설 형식으로 써 보고 싶어요.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자기에게는 충실한, 일종의 지식인 소설이 되겠죠. 소설로 써 보다 안 되면 에세이로라도 내고 싶습니다.”
그가 구상하는 소설(또는 에세이)에는 <그 이름 안티고네>에서 역설한 소수의견의 필요성, 인터뷰에서 비판한 문재인 정권의 역사 인식, ‘촛불’로 상징되는 직접민주주의에의 유혹에 대한 경계 등이 담길 모양이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