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승효상 지음/돌베개·2만8000원
2018년 여름, 승효상은 동학(同學) 25명과 함께 ‘추방당한 자들의 공간’을 찾아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잇는 2500㎞의 여정을 떠난다. 그러나 여기에서 ‘추방’은 강제로 쫓겨남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세상의 경계를 넘어 세속 밖으로 걸어나오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침묵과 노동 속에 가두는 적극적 행위를 일컬음이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건축가이지만 실패에 대한 여전한 두려움과 불안,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십년 가까이 들러붙어 있는 불면을 그대로 안은 채, 그는 자발적 고독 속에서 영적 쟁투를 벌였던 이들의 공간을 찾아 나선다. 아시시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체르토사 델 갈루초, 산 마티노 성당, 르 토로네 수도원, 라 투레트 수도원, 롱샹 성당, 폐허가 된 클뤼니 수도원을 비롯해 르 코르뷔지에가 말년을 보낸 남프랑스의 4평짜리 오두막(카바농) 등등.
승효상은 2014년부터 건축·인문·예술·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1년 과정 아카데미, 동숭학당을 이끌며 해마다 학생들과 국외 답사를 진행해왔다. 2018년의 주제는 ‘공간’이었는데 이에 맞춰 물리적으론 밀폐됐으나 영성으로는 충만한 집, 수도원을 순례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여행의 동기나 답사의 ‘리더’라는 실무적 역할과는 별개로, 그의 순례기는 ‘나’ 승효상에 맞춰져 있다. 유쾌한 도반들과 어울리면서도 그는 ‘침묵’이란 화두를 여행 내내 놓지 않고, ‘절박함은 침묵을 만들며 그 침묵을 견딤으로써 진정한 언어가 나온다’는 구절(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을 곱씹는다.
건축가에게서 진정한 언어란 ‘진정한 건축’의 동의어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가 여행을 통해 찾아내고 싶었던 것은 건축의 본질이었다. 그 해답을 명징한 문장으로 표현하긴 쉽지 않지만, 그는 순례의 절정이랄 수 있는 12세기 르 토로네 수도원과 20세기 중반 르 코르뷔지에의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 빛과 그림자, 고요와 강인함, 명료함과 절제, 겸손과 경외를 온몸으로 느낀다. 예수는 말했다. “나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세상에 속하기를 스스로 버린 자들의 공간’에서 그는 예수의 말을 되새기며 건축가의 소명을 묵상한다. “바른 건축을 하기 위해선 스스로를 수시로 밖으로 추방하여, 광야에 홀로 서서 세상을 직시하는 성찰적 삶을 지켜야 한다. 오로지 진리를 따르며 그 안에서 자유하는 자, 그가 바른 건축가가 된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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