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살림·1만6000원 “카야, 조심해. 꼭. 누가 와도 절대 집 안에 들어가지 마. 널 잡아갈 수도 있어. 습지 깊은 데로 도망가서 덤불에 꼭꼭 숨어. 발자국 지우는 거 잊지 말고. 오빠가 가르쳐줬잖아. 너도 아버지를 피해서 숨을 수 있어.”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떠나는 오빠. 오빠는 떠나기 전 집에 홀로 남을 6살짜리 여동생 카야에게 이렇게 말한다. 낡은 오두막집 주변에 펼쳐진 너른 해안 습지는 카야에게 마지막 피난처다. “더럽게 뜨거운 낮을 하루 더 견뎌낸 개구리와 도마뱀들의 텁텁한 숨결, 습지가 낮게 깔린 안개로 바짝 다가왔고 카야는 그 품에서 잠이 들었다.”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한 소녀의 성장담이다. 일찍이 가족이 흩어진 카야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이 습지를 벗 삼아 성장한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살아온 카야에게 마을 청년들이 다가오는데, 그중 한 명이 숨진 채 습지에서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재판 이야기가 카야의 성장담과 이어지며 재미를 더한다. 나뭇가지마다 유령처럼 걸린 이끼와 무른 흙, 드넓은 늪과 못에 떠다니는 물풀들.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해온 생태학자인 저자가 미국의 해안 습지를 묘사하는 시선은 섬세하다. 소설은 미국 남부 습지의 비현실적인 풍경을 풍부하게 담으면서도 여성의 독립, 계급과 인종,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 시의적절한 화두들을 예리하게 던진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출간된 뒤 지금까지 40주나 아마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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