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지음/허블·1만4000원 김초엽(26·사진)은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은 과학도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첫 소설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에스에프(SF) 단편 일곱이 묶였다. SF는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약자이지만, 달리는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로 풀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의 이동을 통해 일종의 사고실험을 한다는 취지에서다. 지금 우리가 사는 행성이 아닌 다른 시간과 공간을 배경 삼고, 인간이 아닌 외계 생명체 또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통해, 에스에프는 우리의 사고 범위를 넓히고자 한다. 김초엽의 등단작이자 출세작인 ‘관내분실’은 죽은 사람의 마인드를 저장해 두는 도서관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고인의 생전 모습과 말, 행동을 데이터로 보관해 두고,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찾아가 접속하면 살아 있을 때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 것. 그것을 두고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남아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과, 생전에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럴싸하게 재현된 홀로그램에 불과하다는 이들이 맞선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지민은 도서관에서 어머니의 마인드와 접속하고자 하는데, 도서관 쪽에서는 어머니의 데이터가 어딘가에 있는 건 확실하지만 인덱스 내역이 사라져 검색할 수 없다고 한다. 생전의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지민은 그 자신 출산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사라진 어머니의 흔적을 찾으면서야 산후 우울증을 앓았던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인류가 외계 행성 개척에 나선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우주정거장의 쓰레기 수거 업무를 맡은 남자는 오래 전에 폐쇄된 정거장에서 슬렌포니아라는 외계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을 기다리는 과학자 출신 할머니 안나를 마주친다. 냉동 인간 기술에 의지하던 우주 비행이 고차원 웜홀 통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안나는 먼저 슬렌포니아에 가 있던 남편 및 아들과 생이별인 채로 100년 넘는 세월을 버려진 우주 정거장에서 오지 않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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