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과학도 출신 젊은 작가의 SF 사고 실험

등록 2019-06-21 06:02수정 2019-06-21 20:0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허블·1만4000원

김초엽(26·사진)은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은 과학도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첫 소설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에스에프(SF) 단편 일곱이 묶였다.

SF는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약자이지만, 달리는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로 풀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의 이동을 통해 일종의 사고실험을 한다는 취지에서다. 지금 우리가 사는 행성이 아닌 다른 시간과 공간을 배경 삼고, 인간이 아닌 외계 생명체 또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통해, 에스에프는 우리의 사고 범위를 넓히고자 한다.

김초엽의 등단작이자 출세작인 ‘관내분실’은 죽은 사람의 마인드를 저장해 두는 도서관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고인의 생전 모습과 말, 행동을 데이터로 보관해 두고,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찾아가 접속하면 살아 있을 때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 것. 그것을 두고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남아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과, 생전에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럴싸하게 재현된 홀로그램에 불과하다는 이들이 맞선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지민은 도서관에서 어머니의 마인드와 접속하고자 하는데, 도서관 쪽에서는 어머니의 데이터가 어딘가에 있는 건 확실하지만 인덱스 내역이 사라져 검색할 수 없다고 한다. 생전의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지민은 그 자신 출산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사라진 어머니의 흔적을 찾으면서야 산후 우울증을 앓았던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인류가 외계 행성 개척에 나선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우주정거장의 쓰레기 수거 업무를 맡은 남자는 오래 전에 폐쇄된 정거장에서 슬렌포니아라는 외계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을 기다리는 과학자 출신 할머니 안나를 마주친다. 냉동 인간 기술에 의지하던 우주 비행이 고차원 웜홀 통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안나는 먼저 슬렌포니아에 가 있던 남편 및 아들과 생이별인 채로 100년 넘는 세월을 버려진 우주 정거장에서 오지 않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던 것.

외계 생명체의 존재는 에스에프의 단골 소재다. 김초엽의 단편 ‘공생 가설’에서 류드밀라 마르코프라는 화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행성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주목을 받았다. 류드밀라는 그 행성은 실재하며 자신의 그림은 자신이 직접 본 그 행성의 모습이라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류드밀라가 죽은 뒤, 심우주를 항해하던 우주망원경이 류드밀라가 그림으로 묘사한 것과 흡사한 행성의 존재를 알려왔다. 그런데 그 행성은 벌써 오래 전에 모항성의 플레어 폭발에 의해 불타 버렸다는 것. 그렇다면 류드밀라가 그림으로 그린 행성의 모습은 어떻게 된 것일까. 독자의 허를 찌르는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그 답이 있다.

외계 생명체를 탐사하기 위한 우주선이 실종되면서 태양계 밖을 떠돌다가 40년 만에 구조된 ‘스펙트럼’(발표 당시 원제는 ‘나를 키우는 주인들은 너무 빨리 죽어버린다’)의 할머니나 미발표작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의 우주인 재경과 가윤이, 표제작의 안나와 마찬가지로, 여성이라는 사실도 김초엽의 에스에프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라 하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허블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