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수건제성은 글, 윤태규 그림/개암나무·1만3000원
장모님은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아내는 그런 엄마가 종종 못마땅하다. “이런 거 쓰지도 않으면서 꼭 가지고 있어야 돼? 공간도 좁은데.” 그리고 기회가 닿는 대로 본인이 정리를 해주려 한다. 하지만 버리려 쌓아놓은 물건이 눈에 잡히기라도 하면 장모님은 꼼꼼히 살핀다. “이거 그때 걔가 선물로 준 거야.” “어이쿠, 이건 여행 갔다 산 거 아니니?” 그러곤 하나둘씩 도로 제자리다. <춤추는 수건>은 장모님과 아내의 소박한 다툼과 같은 일상의 일에서 진한 울림을 길어 올려 만든 동화책이다.
김옥분 할머니가 햇살 따가운 마당을 내다보며 “오늘이… 그날이로구먼!” 하자, 빨래 바구니 속 수건들이 옹성거리기 시작한다. “대체 무슨 날이라는 거야?” ‘김옥분 여사 고희연 기념’ 글자가 새겨진 수건이 답한다. “낡은 수건 하나를 버리는 날이지.” 새로 들어온 ‘정효주 공주 첫돌’ 수건은 “저는 아니겠지요?”라며 울먹인다. 정작 두려워해야 할 이는 가장 낡은 ‘만세 주식회사 춘계 워크숍’ 수건이다. 옥분 할머니 남편이 아직 정정하던 시절 회사 워크숍에서 받아온 수건이다. 할머니는 삶아 치댄 뒤 마당에 널면서 수건을 하나하나 꼼꼼히 보기 시작하는데….
<춤추는 수건>의 울림이 진한 이유는 흔하기 이를 데 없는 물건인 수건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울림은 글자가 해져 가는 수건처럼 기억을 잃어가는 병에 걸린 할아버지와 겹치면서 진폭이 커진다.
우리 모두에게는 흔히 지나치다 쓸모가 다했단 생각에 버렸던 물건이 분명 한두 개쯤 있었을 것이다. 제성은 작가는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던 수건 속 글자들처럼 숨겨진 보물들”이 있다는 것을 이 동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 없는 부모와 일찍부터 시작되는 공부에 지치는 아이가 함께 주변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6살 이상.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그림 개암나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