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선악과 피아, 갑을이 구분되지 않는 한낮의 노동 세계

등록 2019-06-28 06:00수정 2019-06-28 20:12

경제 문제 다룬 장강명 소설집 ‘산 자들’
선명한 이분법 대신 불편한 진실 직시
에스에프 소설집 ‘…초능력’도 함께 내놔

산 자들
장강명 지음/민음사·1만4000원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장강명 지음/아작·1만4800원

장강명은 장편 <표백>(2011)으로 제16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그 뒤에도 여러 문학상 수상작을 비롯한 장편에 집중해 왔다. 단편집은 2012년에 낸 연작 <뤼미에르 피플>이 유일했다. 단편에서 출발해 장편으로 나아가는 한국의 대부분 작가들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그가 등단 이후 발표한 중단편을 망라한 소설집 두 권을 한꺼번에 내놓았다. “한낮의 노동과 경제 문제들”(‘작가의 말’)을 다룬 연작 단편집 <산 자들>과 에스에프 중단편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이 그것이다. <산 자들>에는 해고와 파업, 철거, 취업 등 경제 현장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 세 묶음으로 나뉘어 실렸고, <…초능력>에는 따로 단행본으로 내기도 했던 중편 ‘아스타틴’을 비롯해 길고 짧은 에스에프 10편이 묶였다.

자동차 생산 회사의 구조조정을 위한 해고 사태를 다룬 ‘공장 밖에서’가 이번 연작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실천문학> 2015년 봄호에 처음 발표했을 때 이 작품의 제목이 ‘산 자들’이었다. “해고는 살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죽은 자’들이었고, 해고자 명단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산 자’가 되었다.”

경제와 노동 문제를 다룬 단편집 <산 자들>과 에스에프 소설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낸 소설가 장강명. “일단은,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감각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이 불편한 감각을 가진 채로 반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경제와 노동 문제를 다룬 단편집 <산 자들>과 에스에프 소설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낸 소설가 장강명. “일단은,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감각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이 불편한 감각을 가진 채로 반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작가는 회사와 노조, 해고자와 생존자의 처지를 두루 헤아리며 사태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저희도 같이 좀 살면 안 됩니까?”라는 해고 노동자의 절규와 “다는 몰라도, 저 새끼들 중에 몇 놈은 절대 받아 주면 안 되죠”라며 이를 가는 생존자의 분노가 소설 중심 인물인 차장에게 차례로 향한다. 해고자들과 생존자들 사이의 갈등과 충돌이 급기야 유혈 사태로 치닫고, “차장은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치며 조립 공장으로 달려갔다”라는 소설 마지막 문장은 문제적이다. 그 자신 노동자인 차장은 손에 든 쇠 파이프로 농성 중인 동료 노동자들을 가해하려 달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80년대 노동소설의 전형적인 결말을 뒤집은 듯한 이런 마무리는 피아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고 을과 을이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기발령’에서 팀 전체를 대기발령 해 놓고 그중 몇몇을 개별 접촉하는 회사와 겉으로는 집단 행동을 하면서도 “우리 다 각자도생하는 거”라며 제 살길을 따로 찾는 노동자, ‘현수동 빵집 삼국지’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난립한 세 빵집의 무한 생존 경쟁, ‘알바생 자르기’에서 계약직 보조 직원의 해고를 둘러싼 갈등 등 책에 묘사된 상황들은 선악이나 갑을 관계로 명쾌하게 구분하기 어렵도록 착종되어 있다. ‘알바생 자르기’ 같은 작품을 읽고서 뜻밖에도 관리자에게 공감하는 독후감이 적지 않더라고, 26일 서울 강남 신사동 민음사에서 만난 작가는 말했다.

“어떤 사회적 문제가 터질 때 우리는 한쪽으로는 구세주를 찾고 다른 한쪽으로는 악마를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명쾌한 답은 없다’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이번 제 책을 읽고 나면 무력감과 불편함을 느끼실 텐데, 저는 그런 무력감과 불편함 그리고 그로테스크함이 우리 시대의 실상이라고 봅니다.”

두 소설집 <산 자들>과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낸 소설가 장강명.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두 소설집 <산 자들>과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낸 소설가 장강명.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기본적으로 내가 인식하는 세계가 회색이고 나의 태도도 회색”이라고 그는 말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자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어떤 비인간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그게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사람들을 그런 상황에 몰아넣은 톱니바퀴를 확인해서 뺄 건 빼고 늦출 건 늦추는 해결책을 마련해야죠. 그 해결책이 속 시원한 성질의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산 자들>과 <…초능력>은 나에게는 이란성 쌍둥이 같다. 에스에프 소설들에도 작가로서 나의 디엔에이(DNA)가 들어 있다”고 장강명은 말했다. “고립된 한 사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그 한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외부 환경 또는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그는 부연 설명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