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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좌익활동 하다 스러져간 부모 향한 진혼곡

등록 2019-06-28 06:01수정 2019-06-28 20:13

민들레꽃반지
김성동 지음/솔·1만3000원

김성동(사진)의 새 소설집 <민들레꽃반지>에는 표제작인 단편과 두 중편 ‘고추잠자리’와 ‘멧새 한 마리’가 실렸다. 두 중편은 각각 다섯 쪽 안팎의 ‘제망부가’(祭亡父歌)와 ‘제망모가’(祭亡母歌)를 서문처럼 앞세우고 작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담았다. 그 이야기들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해방공간과 6·25 전쟁기에 좌익 활동을 하다가 경찰이나 우익 민보단에 체포된다. 표제작은 현대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여기서도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6·25 당시로 기억이 돌아가 ‘해방의 노래’를 부르고 인민공화국 구호를 외친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살다 간 작가 부모의 해원을 꾀한 연작 소설집이라 할 수 있다.

표제작 ‘민들레꽃반지’에서 “김씨 어머니는 족보에 오른 ‘진빨’이었다.” ‘진빨’이란 진짜 빨갱이라는 뜻인데, 1969년 대검찰청에서 낸 <좌익사건실록>에 ‘여맹원 북괴 찬양고무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이름과 활동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는 근거에서다. 그런 어머니에게 인근 군 부대에서 보낸 6·25 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 접수 안내 편지가 오고 어머니의 기억이 6·25 당시로 돌아가면서 묵은 상처가 다시 불거진다.

“인저 저허구 사넌 거쥬? 우덜 시 식구 하냥 사넌 거쥬? 유자생녀 만수다복 향복허게 하냥 사넌 거쥬?”

아들을 죽은 남편으로 착각한 어머니는 아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먹이며 이렇게 묻다가는, “죄선공산당 만서이!” 두 팔을 치켜올리며 만세를 부른다. “시집올 때 가지고 왔다는 무명으로 된 붉은 치마와 노랑 저고리 차림”에 “초례청에 선 새악시처럼 정성껏 단장”한 어머니가 남편이 끼워주던 민들레꽃 무늬 금반지를 정성 들여 닦는 마지막 장면은 말하자면 미당의 시 ‘신부’에 역사적·현실적 맥락을 입힌 버전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고추잠자리’는 전국농민동맹충청남도본부위원장이자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비선실세였던 ‘사내’가 해방 공간에서 고향 보령 일대를 돌며 부녀자들과 야산대(빨치산)를 상대로 이념 교육을 하고 활동을 지시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 자신의 부친이 바로 이런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전쟁통에 학살되었는데, 그가 1980년대 초 문예지에 연재하다가 검열 때문에 중단한 장편 <풍적>은 그렇게 처형된 아버지의 혼백을 화자로 삼은 작품이었다.

<풍적>에는 네 살이 되도록 입을 떼지 않아 식구들이 벙어리로 알았던 아들이 어느 순간 대전 쪽 하늘을 보며 “아부지!”를 연거푸 부르고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번 책에 묶인 ‘멧새 한 마리’에 그 장면이 다시 나온다. “그러니까 그때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던 때 아이 아버지 되는 이 염통에는 총알이 박혔던 것이다.”

’멧새 한 마리’는 남편의 감화와 교육을 바탕으로 여성동맹 면위원장을 맡기도 한 ‘아낙’의 전쟁기 활동을 그린다. 그러니까 “말로 하려면 울음이 터져 말소리가 나오지 못하고 글을 쓰려 해도 가슴이 막히고 손끝이 흔들려서 글자가 되지 못하나, 생각만큼은 어제인 듯 새록새록한” 옛시절을 치매의 도움을 얻어 다시 떠올린 게 ‘민들레꽃반지’라 하겠다. 작가는 특유의 순우리말 어휘들에 각주 형식으로 뜻풀이를 새기고 인명과 고유 명사에 대해서는 권말 부록으로 상세한 설명을 달아 놓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솔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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