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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2월 23일 한국어 연습장

등록 2005-12-22 21:58수정 2005-12-23 15:13

한국어 연습장 ⑩
광경 : 장면
보이는 것만 본다

[오늘의 연습문제]

괄호 안의 두 낱말 중 문맥에 어울리는 것을 고르면?

학살 (장면/광경)을 삭제하지 않은 채 영화를 상영했다.

갈대밭이 천지를 뒤덮은 (광경/장면)을 하늘에서 내려다보았다.

바로잡아야 할 우리 역사 서른일곱 (장면/광경)


[풀이]

존 버거의 말마따나,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본다. 본다는 것은 선택의 행위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 모양이나 형편이 눈에 보였을 때 그것을 ‘광경’ 또는 ‘장면’이라 일컫는다. 두 낱말의 차이는 대상을 보는 의식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선 ‘장면’은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 작품 속의 한 정경을 말한다. ‘장면’이 변화하는 상황의 어떤 부분을 잘라내어 일이 벌어지는 그 장소의 모습이나 현상만을 가리키는 데 비해, ‘광경’은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말한다.

그런데 ‘광경’과 ‘장면’은 서로 대체해도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다. “부자 상봉의 감격적인 장면” “그는 머릿속에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들을 그려 넣었다” 같은 문장에서는 ‘장면’을 ‘광경’으로 바꾸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문틈으로 엿보았더니 방 안에서는 희한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같은 문장에서는 어쩐지 ‘장면’이라는 말이 어색하다. ‘광경’과 ‘장면’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할까.

간단히 말해, 영화 속의 일출은 ‘해돋이 장면’이고 실제 현실 속의 일출은 ‘해돋이 광경’이다. 그런데 만약 눈앞에 펼쳐진 낙산사의 일출을 보면서 굳이 ‘해돋이 장면’이라고 했다면, 이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듯이 일출을 보고 있다는 암묵의 전제가 함축되어 있다. 다시 말해 ‘광경’을 주체적이고 의식적으로 편집해서 보면 ‘장면’이 되는 것이다.

흔히 현실 공간에서 벌어지는 실제 현상을 ‘광경’이라 하지 않고 ‘장면’이라 표현하는 것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대상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희미한 근대적 장르의 발달이 초래한 경향일지 모른다. 더구나 어떤 부문이든 편집 작업이 중요시되는 정보화 사회임에랴.

이처럼 ‘장면’에는 어떤 의도를 품고 전체 가운데 특정한 부분만 선택하여, 거기에 의식적인 조작을 가해서 본다는 뜻이 숨어 있다.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장면만 모아서 ‘명장면’이라는 이름으로 조합하기도 하고, 역사를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낸 작품으로 보고 그 가운데 필요한 대목만 이러저러한 ‘장면’으로 추리기도 한다. 요컨대 ‘장면’은 의도적이고 인공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장면’이 2차원이라면 ‘광경’은 3차원이다. 따라서 ‘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밑에서 올려다보는 일은 가능하지 않지만, ‘광경’은 얼마든지 위에서도 아래서도 조망할 수 있다.

[요약]

광경: 눈앞에 펼쳐지는 경치|우연적이고 자연적|편집 의식 없음|2차원

장면: 변화하는 상황의 어떤 부분|의도적이고 인공적|편집 의식을 전제|3차원

김경원/ 문학박사·한국근대문학

[답]

장면, 광경,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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