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의 전설이지은 지음/웅진주니어·1만3000원
호랑이는 우리나라에 각별한 동물이다. 한반도 모양도 호랑이를 닮았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옛사람에게 호랑이가 그렇게 친한 동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곰은 사람이 되고 호랑이는 실패했던, 멀리 단군 신화까지 가지 않아도 그렇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을 옛이야기를 보면 호랑이는 무시무시한 대상으로 그려진다.
호랑이가 나오는 대표 전래 동화로 꼽히는 게 ‘해와 달이 된 오누이’(‘해님달님’)이다. 이야기 속에서 어머니는 장터에 떡을 팔러 남매를 두고 집을 나선다. 늦은 밤 장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호랑이를 만나고, 호랑이는 고개마다 떡을 요구하다 결국 어머니를 잡아먹는다. 이야기의 결말은 오누이까지 노리고 온 호랑이가 하느님의 벌을 받아 수수밭에 붉은 피를 뿌리며 죽고, 오누이는 하늘에 올라 해와 달이 되는 것으로 맺는다. 다른 유명한 동화 ‘팥죽할멈과 호랑이’에서도 호랑이는 할머니를 잡아먹으려 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나온다. 사람을 해칠 힘을 지닌 존재와 맞닥뜨리며 살았어야 할 옛사람의 삶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런 옛이야기에서 플롯을 따와 익살스럽게 비틀고 현대적 감각을 결합한 새 동화책, <팥빙수의 전설>이 나왔다. 무서운 이야기보다 여름나기에 더 좋은 친구인 팥빙수의 유래를 호랑이에 대한 전래 동화가 얽힌 이야기로 빚어낸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이다.
<팥빙수의 전설>에서 할머니는 딸기에 참외, 수박을 따고 팥죽까지 쑤어서 장에 내다 팔러 길을 나선다. 그런데 불현듯 산속에 불어닥치는 눈발, 이어서 새하얀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맛있는 거 주면 안 잡아먹지”하는 호랑이에게 할머니는 힘들게 장만한 팔 거리를 차례차례 잃는다. 결국 어머니까지 잡아먹힌 ‘해님달님’을 연상시키지만, 생사를 건 둘 사이 지혜 겨루기는 앙증맞은 그림으로 전혀 무섭지 않다. 수박을 뺏은 호랑이에게 “씨는 빼고 먹어. 배 속에서 수박이 자란다”며 시간을 버는 할머니처럼 사이사이 미소 짓게 하는 호랑이와 할머니의 말과 행동도 묘미다.
전작에서 아빠와 딸의 애틋한 사랑을 ‘어느 날 갑자기 종이가 된 아빠’라는 기발한 상상으로 풀어냈던 이지은 작가는 이번에도 무더운 밤을 식혀줄 유쾌한 상상으로 팥빙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작가는 “어릴 적, 한여름 밤이 되면 손수 얼음을 갈아 한 사발씩 만들어 주시던 할머니표 팥빙수”에서 “눈호랑이 범벅”이라는 상상의 날개를 얻었다고 한다. 대상인 아이보다 어른을 염두에 둔 듯한 유머가 사이사이 눈에 띄지만 크게 거슬리진 않는다. 유아.
권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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