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먹고 마시는 심리학 -생각 없이 먹고 마시는 당신을 위한 실험 심리학 알렉산드라 W. 로그 지음, 박미경 옮김/행복한숲·1만8000원
사랑을 잃고 울면서 아이스크림을 퍼먹는다. 단것을 먹으면 기분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혀에 달콤한 물질이 닿으면 쥐들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오랑우탄도 더운 여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웃는다.
남들보다 맛을 섬세하게 느끼는 초미각자(슈퍼테이스터)인 지은이는, 음식을 심하게 가려 먹는 특이 식성 탓에 ‘먹고 마시는 행동 연구’를 했다. 이 책 <죽도록 먹고 마시는 심리학>을 쓴 것도 뉴욕시립대에서 강의를 개설한 뒤 수강생이 매년 점점 더 몰려드는 것을 보고서였다. 먹고 마시는 문제를 알면 스스로 음식 선택과 양 조절을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꽤 계몽적인 논리인데, 인간이 그렇게 합리적이기만 하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먹는 행위엔 생각보다 더 복잡한 심리적, 영양학적 요소가 끼어든다. 예컨대 낯선 음식을 기피하는 이유는 ‘새것 공포증’(네오포비아) 때문이지만, 이와 반대로 최근 먹은 음식을 피해서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려는 경향도 인간에게는 공존한다.
오랑우탄이 여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웃고 있다. 혀에 달콤한 물질이 닿으면 쥐들도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책은 100여년 동안 인류가 실행한 배고픔과 포만감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고 섭식과 관련된 심리학뿐 아니라 영양학, 의학, 교육학, 사회학적 지식을 망라한다. 먹는 행위의 복잡성 탓이다. 인간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고 해서 무조건 부엌으로 달려가는 존재가 아니다. 먹는 행위엔 온갖 요인이 구조적으로 얽혀 드는 것이다. 그렇게 복잡한, 먹고 마시는 행위를 설명하려고 책은 먼저 미각과 후각, 음식 선호, 충동과 자제력 등을 다룬 뒤 후반부에는 다이어트, 거식, 폭식, 알코올중독, 카페인과 흡연까지 설명한다. 이 연구는 죽도록 먹고 마시려는 강렬한 욕구와, 식욕을 억제해 건강과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사이를 평생 오가는 고단한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와도 맞닿아 있다.
부모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섭식 교육 대목도 자주 보인다. 아이들은 쓴맛 때문에 채소 먹기를 두려워한다. ‘채소공포증’(라차노포비아)이다. “시금치 먹으면 사탕 줄게”라는 얘기를 듣고 자란 아이는 시금치를 더 싫어하게 되고 사탕은 더 좋아하게 된다. 미취학 아동에게 “제발 마저 먹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 음식을 더 싫어하게 할 수 있다. 심지어 아이가 특정 음식을 싫어하는 건 어른의 취향 때문일 수 있다. 생후 36시간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도 어른 얼굴 표정을 읽기 때문에 먹을 것을 주는 어른들의 음식 선호는 아이의 음식 선호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아이의 음식 선호에 대해선 낙담도, 지나친 희망도 금물이다. 지은이는 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단맛을 멀리하도록 교육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는 ‘두 발 달린 짐승’이었으므로 어디든 나가서 달콤한 것을 얻어먹거나 사 먹었기 때문이다.
단맛과 짠맛은 인간에게 기쁨과 활력을 준다. 말, 곰, 개미를 포함해 많은 종의 동물이 단맛을 유달리 좋아하는데, 사람이나 쥐나 어릴수록 단맛을 좋아한다. 농축된 칼로리에 대한 선호는 동물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당분 칼로리는 심혈관계 질환, 비만, 당뇨병을 촉진하니 장단점이 뚜렷하다. 짠맛 또한 강하고 보편적이다. 소금이 모자라면 최악의 경우 탈수로 죽지만 염분을 과다 섭취해도 고혈압에 걸리기 쉽다. 당분은 몰라도 소금은 훈련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저염 식사를 몇주 동안 유지하면 싱거운 음식을 선호하게 된다. 새롭거나 특이한 경험을 좋아하는 ‘감각 추구’ 성향의 사람일수록 매운 음식을, 감각 추구가 낮은 사람일수록 밋밋하고 단 음식을 선호했다.
보통 사람은 4리터 물에 소금이 3분의 1 작은술만 들어 있어도 맛을 감지한다고 한다. 저염식을 몇주 유지하면 싱거운 음식을 선호하게 된다. 사진은 저염식 찌개.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타임>이 밝힌 사형수들 최후의 식사를 보면 스테이크, 햄버거, 감자튀김, 달걀, 위스키, 딸기, 아이스크림, 휘핑크림 같은 고칼로리 음식들이 주를 이뤘다. 패스트푸드는 인간이 태생적으로 좋아하는 단맛, 짠맛, 지방, 고칼로리로 이뤄져 있다. 심리학자들은 허기진 젊은이들에게 모두 5일 동안 두 종류의 요구르트 중 하나를 매일 교대로 주었다. 양과 맛이 같았지만 하나는 57칼로리였고 하나는 255칼로리였다. 나중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더니 모두가 고칼로리 요구르트를 택했다. 실험실의 쥐와 인간 모두 스트레스를 받으면 고칼로리 음식을 택했다. 전미 미식축구 리그전 때 연고지 팀이 패하면 사람들은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을 많이 먹었다. 아슬아슬하게 이겼을 땐 반대였다.
어른 인간이 선호하는 음료, 알코올의 경우를 보자. 나이가 들수록 인체의 수분 총량은 감소한다. 노인이 한해 전 마신 양과 똑같은 양의 술을 마시더라도 체내 알코올 농도는 전보다 더 높아진다. 연구자들은 술만 한 보상을 주는 다른 것이 없을 때 사람의 음주가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알코올 남용은 사람이 인생에서 술이 제일 좋은 부분이라고 인식할 때 생긴다는 얘기다. 초파리들도 교미하지 못할 때 알코올을 더 선호했다. ‘치맥’은 지방과 알코올의 ‘잘못된 만남’이지만 힘든 인간이 살려고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행위인 것이다.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는 것은 정치적인 일일 수 있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먹고 마시는 것을 이해할 때 식습관을 규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은이의 예상은 맞지만, 대체로 빗나갈 것이다. 인간은 알고 규제한다고 해서 따르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은이가 여러 번 강조한바,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선택하고 먹는지의 문제는 더없이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라는 점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먹고 마시는 행위에는 영양, 비용, 시간, 관행, 문화적 믿음, 계급까지가 강하게 결부돼 있으므로.
“지금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며 지은이는 묻는다. “제조업자들과 유통업자들이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대중이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는 것을 왜 허락해야 할까? 그러면서 건강한 식습관을 위한 조치는 왜 막을까?” 불량 식품 파는 가게가 즐비한 동네와 유기농 샐러드점이 즐비한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은 각각 어떤 식습관과 신체를 갖게 될까? 지은이의 물음은 정당해 보인다. 다만 어머니 또는 임신부의 책임을 너무 강조하는 점이나, ‘민족 요리’를 다룬 부분에서 한국인의 대표적 풍미 원리로 간장, 참깨, 고추와 함께 ‘황설탕’을 지목한 책을 인용한 것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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